제약사들이 의약품 특성에 따라 복제약(제네릭) 시장에서 상반된 가격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일부 비급여 의약품이나 고가 의약품 등 가격 인하 여력이 큰 시장에선 경쟁적으로 저가 경쟁을 펼친다. 반면 상당수 보험의약품 시장에서는 최고가를 유지하면서 출혈경쟁을 피하는 분위기다. 지난 2012년 약가제도 개편 이후 제약사들에 제네릭 가격 선택권이 주어지면서 발생하는 현상이다.
◇라코사미드 성분 복제약 보험상한가 제각각..상당수 복제약은 최고가
UCB제약이 개발한 ‘빔팻’의 제네릭 제품으로 16세 이상의 간질 환자에서 2차성 전신발작을 동반하거나 동반하지 않는 부분발작 치료의 부가요법으로 사용할 수 있다.
‘라코사미드’ 성분 의약품 중 기존에는 SK케미칼의 ‘빔스크’ 1종만 지난 2월부터 보험급여가 등재된 바 있다.
여기에 4개 업체의 제네릭이 추가로 건강보험 적용이 확정되면서 5개의 제네릭 제품이 보험급여를 인정받고 경쟁을 펼치게 됐다.
빔팻 제네릭 약물들은 보험약가가 제품간 편차가 크다는 점이 이채롭다. 50mg 용량을 보면 SK케미칼의 빔팻의 보험상한가가 435원인데, 이번에 등재된 4개 제품은 220~296원 사이에서 보험약가가 결정됐다. 제품별로 2배 이상의 가격차가 발생하는 셈이다.
통상 제네릭의 가격이 비슷한 수준에서 형성되는 것과는 이례적이다.
지난해 하반기 제네릭 시장이 열린 베링거인겔하임의 고혈압복합제 ‘트윈스타(성분명: 암로디핀+텔미사르탄)’의 경우 ‘암로디핀5mg+텔미사르탄80mg'은 제네릭 63개가 등재됐는데, 이중 57개 품목이 853원으로 보험상한가가 동일하다.
제네릭 10개 중 9개는 가장 비싼 가격으로 등재된 셈이다. 트윈스타는 지난해 800억원대 매출을 기록한 대형 제품으로 올해 국내 제약업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제네릭 시장이다.
2015년 특허가 만료된 B형간염치료제 ‘바라크루드’는 65개 제네릭(5mg 기준) 제품 중 47개가 최고가인 3082원으로 급여등재됐다. 18개 제품이 2000원대로 등재됐고 일양약품의 ‘일라크루드’ 1개 품목만이 1000원대(1970원)로 책정됐다. 가장 비싼 제네릭보다 34% 저렴한 수준으로 큰 차이가 없는 편이다.
화이자의 소염진통제 ‘쎄레브렉스200mg'은 제네릭 제품 104개 중 85개가 똑같은 521원으로 등재됐다. 300원대와 400원대는 각각 6개, 8개에 불과하다.
라코사미드 제네릭 사례처럼 제네릭간 가격 차가 큰 시장도 있다. 노바티스의 만성골수성백혈병치료제 ‘글리벡100mg'은 제네릭 제품 11개의 보험상한가가 3795원에서 1만1396원으로 다양하게 형성됐다. 최고가 제네릭이 최저가의 3배에 달한다.
◇2012년 약가제도 개편 이후 복제약 가격 선택 가능..시장 특성에 따라 전략 차별화
지난 2012년 약가제도 개편 이후 두드러진 현상이다. 현행 약가제도에서 제네릭은 최초 등재시 특허만료 전 오리지널 의약품의 59%까지 약가를 받을 수 있고 1년 후에는 오리지널과 마찬가지로 53.55% 가격으로 내려간다.
기존에는 제네릭 진입 시기가 늦을 수록 가격이 떨어지는 ‘계단형 약가제도’를 운영했다. 최초에 등재되는 제네릭은 특허 만료 전 오리지널 의약품 약가의 68%를 받고, 이후에는 한달 단위로 10%씩 깎이는 구조다.
2012년 이전에는 제네릭의 발매 시점에 따라 제약사의 의지와 무관하게 사실상 제네릭 가격이 결정됐지만 약가제도 개편 이후에는 제네릭 발매 시기와 상관없이 특허 전 오리지널 가격의 53.55% 이하에서 보험상한가를 결정할 수 있게 됐다.
제약사가 제네릭의 가격을 결정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면서 시장의 특성에 따라 제네릭 가격 전략을 세워야 하는 셈이다. 다만 약값이 비싸지 않은 보험의약품의 경우 가격을 파격적으로 내리지 않는 한 저가전략의 수혜를 기대하기 힘들다는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다.
예를 들어 500원짜리 고혈압약의 보험약가를 300원으로 인하하더라도 환자들이 부담하는 약값은 150원(본인부담률 30%)에서 90원으로 체감하는 인하 폭이 크지 않다. 의료진 입장에서도 저렴한 제네릭을 처방해야 하는 동기가 크지 않다.
제약사들이 대부분의 보험의약품 제네릭 시장에서 고가 전략을 고수하는 이유다. 제네릭 업체들이 가격을 낮추면서 더 많은 처방을 유도하는 것보다는 고가 제네릭으로 많은 마진을 남기는 전략을 효과적이라는 얘기다. 한번 인하된 보험약가는 특별한 사유가 없는한 다시 올라가지 않는다.
업계 한 관계자는 “관련 시장의 특성, 경쟁 제품 수 등을 고려해 제네릭의 보험약가를 결정하지만 선택의 폭은 크지 않다”라고 말했다.
다만 라코사미드 시장과 같이 경쟁 약물이 많지 않은 제네릭 시장에서는 가격경쟁이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란 관측이 제기된다. SK케미칼은 오리지널 제품이 약가협상 실패로 보험급여를 받지 않은 상황에서 제네릭을 급여 등재하면서 기존에 비급여로 오리지널을 복용하는 환자들에 90% 이상 저렴한 가격으로 공급할 수 있게 됐다.
영업현장에서 오리지널 대비 90% 이상의 가격차는 충분히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 SK케미칼에 이어 진입하는 후발주자들도 이미 가격경쟁이 펼쳐지고 있는 시장에서 기존 제품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제네릭을 내놓으며 추가 가격경쟁을 펼치려는 전략으로 분석된다.
글리벡 제네릭의 가격이 다양하게 형성된 것은 오리지널 제품의 가격이 비싸다는 이유로 분석된다. 오리지널 의약품이 1만원 이상으로 책정돼있어 제약사들은 원가 구조상 손실이 발생하지 않는 선에서 제네릭 가격을 떨어뜨릴 여지가 크다는 의미다. 비급여약물인 발기부전치료제 시장에서 오리지널 제품이 1만원대로 판매되는 상황에서 제네릭 제품이 10분의 1 수준의 저렴한 가격으로 판매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업계 한 관계자는 “보험의약품 시장에서는 보험약가는 가장 높은 가격을 받는 것이 현실적으로 유리하다”면서 “일부 시장 특성에 따라 저가경쟁이 효과를 거둘 수도 있어 맞춤형 약가전략이 필요하다”라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