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방로] 세미나의 흔한 풍경(2) - 대학·학계

입력 2018-11-23 06:00 수정 2018-11-23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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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형두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얼마 전 정부 예산을 지원받는 대학 세미나에서 있었던 일이다. 발제가 끝나고 토론이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쭈볏거리며 조용하다가 이내 몇몇 질문이 이어지고 당초 예정된 시간에 닿았다. 장소가 외부라면 대여 시간을 핑계 삼아 서둘러 끝낼 터이나 이날 세미나 장소는 대학 내였기 때문에 예정된 시간을 넘겨도 좋을 것 같았다. 그런데 진행자가 뜨거운 토론을 막아서며 주변 식당에 예약한 시간을 들어, “아쉽지만 여기서 마무리해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토론을 끝내는 것이 정말 아쉬웠을까 싶었지만, 어느 누구도 이의를 달지 않았다. 그때 만약 누군가 “밥은 매일 먹는 것이니 계속합시다”라고 했다면, 그에게는 사회 부적응자 딱지가 붙었을 것이다.

“학이불사즉망 사이불학즉태(學而不思則罔 思而不學則殆)”라는 말이 있다. 공자가 논어에서 한 말인데, “배우기만 하고 생각하지 않으면 미혹되기 쉽고, 생각하기만 하고 배우지 않으면 위험하다”는 뜻이다. 학자(學者)는 풀이하면 ‘배우는 사람’이니 좋은 학자가 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배워야 한다. 그러나 배우기만 하고 생각하지 않거나 공부만 하고 소통하지 않으면 외골수가 되기 쉽다.

읽고 쓰고 생각하는, 자신만의 골방과 함께 그것이 맞는지 소통하는 광장이 있어야 좋은 학자가 될 수 있다고 믿는다. 골방이 연구실이라면 광장은 세미나다. 생각이 완성된 후에 발표하는 자리도 있지만, 완성되기 전에 학계 동료 그룹(peer group)에 생각을 내놓음으로써 검증 과정을 거치는 자리도 있다.

그 점에서 발표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토론이다. 토론(討論)에서 ‘討’자는 ‘친다’는 뜻으로 ‘토벌(討伐)’의 ‘討’자와 같다. 문자 그대로 발제자의 논의를 말로 공격하는 것이다. 발제자는 토론자의 공격을 받고 방어를 잘해야 한다. 영어로 박사학위 최종 구술시험을 ‘디펜스 이그잼(defense exam)’이라고 하는 것과 궤를 같이한다. 토론을 통해 발제자의 논의는 더욱 단단하게 발전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의 세미나에서 이런 토론을 보기란 쉽지 않다. 일단 천편일률 찬사 일색이다. “평소 존경하는 ○○○ 선생님의 발표에 토론을 맡게 돼 영광입니다”로 시작해서 별 내용 없는 군더더기를 더한 후, 시간에 쫓겨 서둘러 끝내고 마는, 그야말로 허사(虛辭)에 불과한 경우가 많다.

그도 그럴 것이 통상적인 세미나에서 토론은 5분, 길어야 10분 정도 할애하고 있으니 한 번 묻고 대답하는 시간으로도 부족하다. 마치 대통령 선거의 방송토론회처럼 논점별로 각자 자기 말을 할 뿐이다. 한 번 묻고 한 번 대답할 정도의 문제라면 거창하게 세미나까지 할 필요가 뭐 있겠는가? 주거니 받거니 하며 몇 순배는 지나야 논제가 환히 드러나게 되고 서로의 약점과 보완할 점이 생길 때 비로소 진정한 토론이라 할 수 있다.

토론이 형식적으로 이루어지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간혹 발제문을 미리 받아 열심히 토론문을 준비하고 토론하는 모범적인 경우가 있다. 나아가 발제자가 토론자의 토론을 통해 자신의 주장을 수정하거나 보강해 최종 논문에 반영한다면 세미나의 진정한 모습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발제자는 논문으로 출판할 때 어딘가에 반드시 토론자에 대한 사사(謝辭, thanks comment)를 빠뜨려서는 안 된다. 구체적으로 밝히면 더더욱 좋다.

우리 학계에서는 이를 생략하는 경우가 일반적인데, 그러다보면 같은 분야 전공자인 토론자는 자신의 특별한 아이디어를 빼앗기는 셈이 되어 열심히 토론할 유인을 잃게 된다. 토론자가 후에 자신의 토론을 발전시켜 논문을 발표할 때 오히려 표절자로 오인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치열하게 토론하되 서로의 생각을 분명히 밝혀줄 때, 세미나는 더욱 활성화할 수 있다.

때로는 세미나 중에 오간 발표와 토론을 듣고 자기 것으로 먼저 발표하는 사람도 있다. 청중에 이런 사람이 있으면 발제자와 토론자는 활발한 논의를 주저하게 된다. 세미나의 활기를 떨어뜨리는 학계의 ‘공적(公敵)’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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