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확산으로 피해를 본 소상공인들에게 지원된 긴급 대출 규모다. 2개월간 1.5% 초저금리로 자영업 심폐소생에 나섰던 정부는 이달 중순부터 2차 수혈을 시작한다. 코로나 대출을 받아 빚 갚고, 주식 사는 얌체족을 가려내기 위해 금리를 3~4%로 올리긴 했지만, 여전히 물적담보나 신용대출보다 싸다.
가뭄(수익 급감)이 들었을 때 논에 물(금융 지원)을 대는 것만큼 확실한 방법도 없다. 문제는 미처 골라내지 못한 피(한계 자영업)까지 그 물을 먹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나라 자영업자 수는 550만 명에 달한다. 전체 근로자 4명 중 1명은 ‘가게 사장님’이다. 이들은 대부분 경기에 민감한 음식이나 숙박업을 한다. 접근이 쉽기 때문이다.
그만큼 경쟁도 치열하다. 2018년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자영업의 1년 내 폐업률은 18.5%에 달한다. 3년으로 기간을 늘리면 46.9%나 된다. 아이템이 좋거나, 이름값(브랜드)이 있더라도 절반 이상은 3년을 버티지 못하고 문을 닫는다는 얘기다.
문만 닫으면 다행이다. 먹고살기 위해 뛰어든 생계형 창업은 빚이 남는다. 그 돈이 400조 원에 이른다. 채용 시장마저 막혀 새 일자리를 구하는 일도 쉽지 않다. 결국 대출은 고스란히 연체되고, 그 돈을 갚으려 자영업자들은 또 금융기관을 찾는다. 빚 굴레의 시작이다.
자영업자들의 곳간 사정이 얼마나 악화하고 있는지는 수치로 가늠된다. 나이스평가정보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개인사업자대출의 최초부실 발생률(신규로 90일 이상 연체에 진입한 대출에 대한 연체율을 전체 대출액으로 나눈 비중)은 1.05%를 기록했다. 전기 대비로 0.09%포인트, 전년 동기 대비로는 0.22%포인트 올랐다. 상호저축은행, 카드사 등 비은행만 따져보면 2.6%나 된다.
한계에 다다른 자영업자들은 우리 금융 시스템에도 악영향을 미친다. 개인사업자 대출은 가계ㆍ기업 대출과 경계가 모호하다. 그래서 ‘숨은 부채’로 불리기도 한다. 가계부채보다 원리금 상환 부담이 큰 데다, 일시상환 비중까지 높아 대출 질(質)도 안 좋다.
경기가 조금만 둔화돼도 곧바로 연체율이 치솟지만, 서민 생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메스를 들기도 어렵다.
결국 벼(건전 자영업)를 잘 키우려면 제때 피를 뽑아야 한다. 사태가 진정되면 영업에 제약이 따르지 않게 규제는 풀어주되, 좀비 자영업을 가려낼 수 있도록 대출 규제는 재정비해야 한다. 농사는 때가 있다. 시간이 흐를수록 피들은 땅속 깊이 뿌리내려, 벼가 익는 걸 방해한다. 지금부터 가려낼 채비를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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