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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가산디지털단지에서 의류 수출업체를 운영하는 L사장은 최근 문턱이 닳도록 은행을 들락거렸다. 주문은 받아놨지만 생산비용이 부족해 은행 대출을 받기 위해서다.
L사장은 "은행들이 자기 살 궁리만 하며 자금 지원에는 미온적이더라"며 "대출이 지연되면서 납기가 늦어졌고 결국 계약이 취소되는 일도 있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L사장은 그나마 다행인 경우다. 대출을 주저하던 은행이 최근 정부의 대책 발표 이후 기존 대출 연장에 동의해줘 조금은 더 버틸 수 있기 때문이다.
20일 중소기업 애로상담센터에 따르면 중소기업들의 자금 관련 상담 건수는 최근 두 달만에 600건이 넘었다. 센터 관계자는 "신규대출이나 만기연장의 어려움 등과 관련된 상담이 대다수"라고 밝혔다.
이처럼 중소기업들의 상황이 점점 나빠지자 정부는 다양한 지원대책들을 내놓았다. 특히 중소기업들의 유동성 문제는 '중소기업 대출'을 정부가 직접 챙겨가면서 해결하겠다고 한다.
김동수 기획재정부 1차관은 지난 11일 "중소기업 자금지원 조건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는 금융기관에 대해 불이익을 주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금융감독원도 지난 17일부터 전문 검사인력 40명으로 '중소기업금융 현장점검반'을 구성해 은행권의 중소기업 지원 실태에 대한 집중 점검에 나섰다.
현장점검반은 앞으로 금융 애로사항이 많이 접수되거나 중소기업 신속지원프로그램 운영 실적이 저조한 영업점, 중소기업ㆍ수출업체가 밀집된 공단 소재 기업금융점포 등을 우선 점검한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산업현장에서는 이같은 정부의 움직임에 대해 기대보다는 불신이 크다. 대다수 중소기업들은 정책 발표 시점에만 ‘반짝’할 뿐 산업현장에서 정부 정책의 온기를 체감하기는 어렵다고 하소연한다. 결국 '정책 따로, 현장 따로'인 겉도는 정책이라는 얘기다.
정부는 은행권의 중소기업 대출을 늘리도록 하겠다고 했지만 실제로 일부 은행의 경우 신규대출을 중단한 것은 물론이고 기존 대출마저 회수에 나서고 있는 게 사실이다.
중소기업중앙회 관계자는 "은행들이 정부의 외채 지급보증 등 특혜를 많이 받고 있음에도 중소기업 살리기에는 지나치게 인색하다"고 말했다. 누리고 있는 혜택에 비해 상생을 위한 노력은 소홀히 한다는 지적이다.
물론 중소기업 대출을 주저하는 은행들 역시 나름의 절박함은 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은행 입장에서는 기업의 회생 가능성을 따질 수 밖에 없다"며 "최대한 정부정책에 맞춰 중소기업 대출 규모를 늘리기 위해 다각도로 노력중"이라고 밝혔다.
다른 은행 관계자는 "BIS 비율 하락 우려 때문에 어쩔 수 없다"며 "당장은 금융당국의 눈치가 보이지만 살아남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최근 한국은행이 발표한 '10월 금융시장 동향'을 보면 경기침체가 본격화된 지난 8월부터 대기업 대출이 중소기업 대출을 앞지르기 시작했다.
지난 7월 3조729억원이었던 대기업 대출은 8월 2조1387억원, 9월 3조1561억원, 10월 4조9668억원으로 같은 기간 중소기업 대출(7월 5조5154억원, 8월 1조7910억원, 9월 1조8587억원) 규모를 크게 상회했다.
한국은행은 지난 19일 10월의 전국 부도업체 수가 전달 대비 118개(58.1%) 늘어난 321개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지난 2005년3월(359개) 이후 가장 많은 숫자이며 증가 규모도 지난해 10월 120개 이후 최대다.
심지어는 튼튼한 중소기업들마저 단기 유동성 문제로 도산 위기에 몰리고 있다.
인천 남동공단에서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K사장은 "정부의 중소기업 지원대책을 환영한다"면서도 "기업들이 정부 대책의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실질적이고 지속적인 정책이 필요하고 특히 후속조치를 통해 중소기업들의 생산현장에 대책의 효과가 미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