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번방 사건이 터진 지 2년이 지났지만 디지털성범죄는 줄지 않고 있다. 지금도 가해자들은 아르바이트 등을 미끼로 피해자들에게 받아낸 사진을 빌미로 협박하고 유포하고 있다.
"얼마나 무서웠을까. (디지털성범죄) 가해자들은 잠정적 살인자야."
48시간 후 업로드가 예고된 디지털성범죄 사건 피해자가 차도에 뛰어드는 것을 목격한 전직 형사가 수사를 벌이는 영화 '걸캅스'에서 주인공 미영의 대사다.
가해자를 체포하면 범죄가 중단되는 일반 성범죄와 달리 디지털성범죄의 피해는 종결이 없다. 가해자가 붙잡혀도 처벌을 받아도 누군가의 컴퓨터에 남아있는 불법촬영물이 재유포되기 시작하면 피해자는 또다시 피해를 겪게 된다.
영상을 소지하거나 시청하거나 유포한 가해자가 불특정 다수고 너무 많다는 점이 피해자들을 더욱 힘들게 한다.
2020년 전국에서 디지털 성범죄 피해는 9549건 발생했는데, 이 중 서울에서 벌어진 사건이 26%에 달했다. 지난 3월 서울시는 디지털성범죄 안심지원센터를 열었다. 한달 만에 상담 사례는 800건을 넘었다.
피해자들이 가장 원하는 것은 영상물 삭제였다. 여러 사이트에 영상이 올라오는 경우 영상물을 삭제하고 재유포자까지 형사고소를 해야한다. 10여 번의 고소까지 진행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안심지원센터에서는 피해자들이 이곳저곳 헤매지 않고 긴급 상담부터 고소장 작성, 경찰 진술동행, 법률‧소송지원, 삭제지원, 심리치료에 이르기까지 원스톱으로 받을 수 있다. 소송지원 1건당 165만 원과 심리치료 비용을 무료로 지원하고 있다.
디지털성범죄는 남녀를 구별하지 않는다. 지난해 여성가족부가 운영하는 디지털성범죄피해자지원센터를 찾은 피해자 6952명 중 남성은 26.5%였다. 남성 피해자는 2018년 209명에서 지난해 1843명으로 4년간 8배 가까이 급증했다. 서울시 안심센터에도 한달만에 4명의 남성 피해자가 도움을 요청했다.
최근 성폭력을 넘어 집단 괴롭힘인 왕따 목적으로 피해자와 포르노 배우를 합성한 불법 합성물 유포도 증가하고 있다. 10대 이용률이 높은 가상공간 메타버스에서도 아바타 캐릭터를 이용한 성 착취가 일어나고 있다. 이처럼 디지털성범죄는 날이 갈수록 진화하고 있고 다양한 피해자들이 속출하고 있다.
피해자들은 부끄럽다는 이유로 숨어서는 안된다. 피해 사실을 혼자서 전전긍긍하며 숨기기보다 적극적으로 대응해 2차, 3차 피해로 이어지는 것을 막아야 한다. 이를 위해 피해자들은 서울시 안심지원센터 등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
이런 범죄는 왜 계속 늘어나는 걸까. 서울시가 가해 청소년들을 모아 상담을 해보니 10명 중 9명은 재미 삼아, 또 호기심에 해봤다고 답했다. 대부분이 '범죄'라는 인식조차 없었다. 대상이 자신이나 가족이라고 생각한다면 단순히 '재미'라고 답할 수 있을까. 어릴 때부터 올바른 성교육을 통해 왜곡된 성인식을 바로잡아야 한다. 피해자 지원, 가해자 처벌 강화와 함께 진화하는 디지털성범죄 근절과 예방을 위한 사회적 관심이 어느 때보다 필요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