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고령화, 만성질환의 증가, 대규모 감염병 등 글로벌 헬스케어 이슈를 해결하기 위해선 바이오산업의 육성돼야 한다. 이를 위해선 병원·대학·기업·공공기관(산·학·연·병)이 연계된 바이오클러스터가 필요한 시점이다.
한국은 1998년 바이오벤처지원센터(BVC) 구축을 시작으로 바이오클러스터 조성을 위해 국가 차원의 노력을 기울여 왔다. 정부는 세계적 수준의 바이오헬스 연구개발을 육성하고 국내 의료산업 발전에 기여하기 위해 2008년 특별법 제정에 따라 대구와 오송에 첨단의료복합단지를 조성했다.
이후 여러 지자체를 중심으로 바이오클러스터가 산발적·경쟁적으로 형성됐다. 하지만, 정부 차원의 일관된 지원 전략 없이 조성되다 보니 투자에 비해 성과가 미약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세계적으로 가장 성공한 바이오클러스터로는 미국 보스턴이 꼽힌다. 보스턴은 1970년대부터 자생적으로 형성됐다. 하버드·MIT·터프츠대·보스턴대 등으로부터 우수한 인재가 유입되고, 메사추세츠종합병원(MGH) 등 세계 최고 수준의 병원과 미국 국립보건원(NIH) 연구개발자금 지원 및 벤처캐피탈(VC) 투자 등이 맞물려 많은 바이오기업이 입주해 선순환 구조가 구축됐다.
또한 메사추세츠 주정부의 다양한 지원 프로그램도 세계적인 바이오클러스터로 성정하는 마중물 역할을 했다. 보스턴 바이오클러스터는 2019년 기준 1000여 개의 기업이 입주해 있고 2조 달러 이상의 경제 효과를 창출하고 있다.
이외에도 영국의 케임브리지, 옥스퍼드, 런던을 잇는 골든 트라이앵글 바이오 클러스터, 노바티스와 로슈 본사가 소재한 스위스 바젤 클러스터, 일본 고베 의료클러스터, 싱가폴 바이오폴리스, 중국 베이징 중관춘생명과학단지 등도 주요 바이오클러스터로 꼽힌다. 모두 우수한 입지적 여건과 산학연이 연계할 수 있는 생태계가 이뤄져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26일 본지 취재에 응답한 국내 전문가들은 대한민국 바이오클러스터를 제대로 육성하기 위해서는 정부 지원은 필수라고 입을 모은다.
미국 보스턴 부총영사를 역임한 이현우 한국제약바이오협회 글로벌본부 본부장은 “정부가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 원칙이 있어야 한다. 또 산·학 간 연계를 지속해서 활성화할 수 있는 중장기 전략이 필요하다”며 “기업과 대학, 연구소 등이 시너지를 얻을 수 있는 환경조성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본부장은 “지역마다 특장점이 있는 만큼, 현 시점에서 바이오·의료기기·연구단지 등 특성을 갖고 있는 각각의 클러스터의 강점을 살리고, 지역경제 활성화 및 산업발전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방향성을 잘 설정해야 한다”고 했다. 이어 그는 “정부 주도 클러스터의 경우 정부 정책의 지속성과 중장기 투자전략에 따라 클러스터의 명운이 갈릴 수 있다. 외국의 성공사례를 참고해 정부가 마중물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고민이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양성일 고려대학교 보건대학원 특임교수(전 보건복지부 1차관)는 바이오클러스터에서 병원의 중요성을 살펴야 한다고 했다.
양 교수는 “의약품과 의료기기는 의료 현장에서 쓰이기 위해 필요하다. 결국 바이오클러스터가 성공하려면 병원과의 연계가 핵심”이라며 “연구소나 기업에서 아무리 노력해도 혁신적인 신약, 의료기기가 나오기 쉽지 않다. 국내에 우수한 병원이 많은 만큼 바이오클러스터와 연계를 강화하려는 정부 차원의 노력이 있어야 한다. 단순히 기업에 자금을 지원하기보다는 기업과 병원이 연계해 연구를 하도록 하는 것이 더 좋은 방안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양 교수는 “잘 연계되지 않고 있는 국내 바이오클러스터가 각자 플레이어로 진행하기 보다는 대한민국이라는 큰 틀 안에서 각각의 역할을 해줄 수 있기를 바란다”며 “보건복지부, 산업통산자원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등 관련 부처가 힘을 합쳐야 한다”고 조언했다.
국내에 산재된 클러스터의 특성을 고려한 맞춤 지원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제시됐다. 장경훈 한국보건산업진흥원 해외의료컨설팅팀 팀장은 “국내에 산재된 클러스터의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 다수의 바이오클러스터가 유사 분야에 중복적으로 투자하고 있어 투자 효과가 감소하고 있다. 바이오클러스터 간 전략적 차별성이 떨어져 국가 차원의 조정 소요가 제기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따라서 장 팀장은 “지역별, 산업별 특성을 고려한 클러스터의 특화 분야를 집중하는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대부분 국내 클러스터들은 여전히 정부의 재정 지원에 상당히 의존하는 상황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클러스터 내 규모가 있는 기업이 허브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제도적인 대안 마련이 필요하다”면서 “국내 다수의 클러스터는 산·학·연·병 간 협력 노력도 부족하다. 국내 분산된 바이오 클러스터 간 연계 협력, 이들을 연계할 종합 지원기구도 부재하다. 지속가능한 모델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중장기 육성 로드맵을 제대로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