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사상 처음으로 영란은행에 보관 중인 금(金) 실사를 마쳤다. 금의 안전성과 보관상태 점검뿐만 아니라 다른 중앙은행의 행태 및 시장여건 등을 확인하기 위해서다.
실사 후 한은은 "표본 금 상태는 모두 양호했으며, 현재 시점에서 금 보유 확대보다는 미 달러화 유동성을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평가했다.
한은 외자운용원은 6일 '한국은행 보유금 관리현황 및 향후 금 운용 방향' 보고서를 통해 금 실사 결과 및 앞으로 운용 계획 등을 밝혔다.
한은은 보유금 104.4톤 전량을 영란은행에 보관하고 있다. 골드바 개수는 8380개다. 금을 영란은행에 보관하기 시작한 1990년 이후 보유금에 대한 실사에 나선 건 이번이 처음이다.
한은은 "보안 등의 사유로 영란은행이 2010년대 중반까지 허용하지 않았던데 주로 기인한다"고 밝혔다.
금실사는 지난달 23일 하루동안 205개(대여금을 제외한 한국은행 보유분 3.05%)의 샘플검사 방식으로 진행했다. 200개는 사전에 영란은행에 통보했고, 5개는 23일 현장에서 임의 지정해 보관상태까지 확인했다.
이번 금 실사는 205개 표본 실사 결과 모두 양호한 것으로 나타났다. 3개의 골드바에서 제련업자 표시가 장부와 달랐는데 이는 제련업자는 같지만 공장소재지가 다른데 기인한 단순 오기였다고 한은은 설명했다.
한은은 "이번 실사를 통해 한은 보유금이 안전하게 보관돼 있고, 영란은행의 관리시스템 효율성 등을 확인했다"며 "다만 이번과 같이 사소하지만 관리상 오기 등이 나타날 수 있으므로 보유금 정보확인을 위해 수년 주기로 실사할 필요성도 확인됐다"고 밝혔다.
이어 "영란은행 금보유는 런던이 금시장 중심지임을 감안하면 불가피한 선택으로 보인다"면서도 "다만 앞으로 한은의 금보유가 늘어난다면 안전성 등을 고려해 보관기관 다변화 등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한은은 일각에서 주장하는 외환보유액중 금보유 확대가 긴요한지에 대해선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한은 외화자산에서 미달러화의 비중은 22년말 현재 70%를 상회하고 나머지는 유로화, 일본엔화, 중국위안화 등 기타 통화로 다변화돼 있다. 금 보유비중은 1%를 조금 넘는다.
미 달러화 비중이 높은 것은 우리나라가 미달러화 경제권으로서 수입지급통화, 외채통화 구성, 국내외환시장 여건 등을 감안한 것이다. 다만 미달러화에 대한 지나친 편중의 부작용 등을 고려해 여타 통화 등으로 다변화해 왔고 금도 같은 맥락에서 일부 보유 중이다.
2011~2013년 금을 90톤 매입했던 것도 외환보유액이 빠르게 증가하고 있는 상황에서 다변화 필요성이 커졌기 때문이었다.
한은은 현재 시점에서는 금보유 확대보다는 미 달러화 유동성을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입장이다.
지난해 외환보유액은 외환시장안정화 조치에 따라 400억 달러 감소했다. 최근 금리 및 주가 안정에 따른 운용수익 증가 등으로 소폭 늘어 외환보유액은 4월 말 기준으로 작년 말 대비 35억2000만 달러 증가했지만, 단기간 내 이전수준을 회복할 기대는 크지 않다.
한은은 "글로벌 경기침체 가능성, 지정학적 리스크 등이 잠재돼 있는 상황에서 금보유 확대보다는 미 달러화 유동성을 충분히 공급할 수 있는 것이 나은 선택으로 평가된다"며 "2018년 이후 금 가격이 미 정부채 투자성과와 상당수준 커플링되고 있어 현재 달러화 유동성으로 보유하고 있는 미 국채를 매도하고 금을 매수할 필요성이 크지 않다"고 밝혔다.
게다가 금은 기타통화들과는 달리 시장전망을 반영해 적극적으로 비중을 조정할 수 있는 운용자산이 아니다. 특히 금은 외환보유액중에서도 최후수단이라는 인식이 있어, 만약 시장 상황 변경에 따라 금을 매도한다면 시장에 예상치 못한 시그널을 줄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금 가격이 이미 전고점에 근접한 상황에서 향후 상승여력이 불확실한 점도 고려해야 한다. 글로벌 경기에 따라 미 달러화의 강세가 언제든 나타날 수 있고, 금보유 기회비용인 실질금리가 플러스로 돌아선 점도 가격상승 제약요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