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 정국 장기화하면… 국가 신용도 하락 및 자금조달 금리 상승 우려
탄핵 정국은 글로벌 업황 부진 등으로 현금 확보에 나선 기업들에게도 직격탄이다. 경기 침체 장기화 속에 탄핵 정국이라는 복합 위기가 더해지며 투자 심리가 위축될 가능성이 높은 탓이다.
투자 심리가 위축되면 주요 자금 조달 창구인 회사채 시장이 냉각될 수 있고, 시장에 매물로 내놔도 인수자를 찾기 어려울 수 있다.
8일 재계에 따르면 사업재편ㆍ자금조달ㆍ자산매각 등을 추진 중인 기업들은 거시경제와 금융시장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탄핵 정국으로 환율, 자금조달 금리, 대외 신인도 등에 악영향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SK그룹은 올해 들어 고강도 사업 포트폴리오 리밸런싱(구조조정)을 추진하면서 자산 매각을 통한 현금 확보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지난 9월 그룹 지주사 SK㈜는 100% 자회사 SK스페셜티의 매각 우선협상대상자로 사모펀드 한앤컴퍼니를 선정했다. 양측은 연내 주식매매 계약을 체결할 예정이다. SK스페셜티는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제조 과정에 쓰이는 특수가스를 생산하는 업체다.
LG화학과 롯데케미칼은 나프타분해설비(NCC)를 매물로 내놨다. 롯데케미칼은 롯데케미칼타이탄, 롯데케미칼파키스탄 등도 팔 계획이다.
또 효성그룹은 효성화학 특수가스(NF3) 사업부 매각을 진행 중이다. CJ제일제당은 바이오 사업 부문의 매각을 추진 중이다.
기업들은 회사채 발행 등을 통한 자금 조달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최근 SK브로드밴드는 2950억원 규모의 회사채를 발행했으며, SK텔레콤 역시 회사채 발행을 진행 중이다.
롯데케미칼은 해외법인 지분 매각을 통한 1조4000억 원의 자금조달을 추진하고 있다. 이 회사는 또 회사채의 기한이익상실(EOD) 조건을 논의할 사채권자 집회를 오는 19일 진행할 계획이다.
기업들은 기존 자금 조달 계획은 예정대로 추진하는 분위기로 알려졌다. 정부가 시장 안정을 위해 무제한 유동성 공급 카드를 꺼내 들며 시장 참여자들을 안심시킨 데 따른 것이다. 회사채 시장에서도 비상계엄 사태 직후인 4일 한화생명이 후순위채 수요예측에서 모집 금액의 2배가 넘는 자금을 모으며 흥행에 성공한 바 있다.
업계 관계자는 "연말이라 회사채 발행 등 올해 필요한 자금 조달을 대부분 마무리 지었고, 정부의 유동성 공급 조치도 있어 당분간 기업 자금 조달에 큰 문제는 없을 것으로 본다"고 예상했다.
다만 탄핵정국이 장기화하면 국가 신용도가 하락하고 채권 금리가 오르는 등 기업 활동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란 우려가 크다. 국제신용평가사 무디스는 비상계엄 사태와 관련해 "정치적 갈등이 장기화해 경제활동에 영향을 끼치면 한국의 국가 신용도에 부정적일 것"이라고 밝혔다.
시장 불안이 지속할수록 초우량채(AAA)에 자금이 몰릴 가능성이 높다. 결국 비우량채(A급 이하)를 중심으로 금리가 상승할 수 있다.
재계 관계자는 "유동성 확보가 급선무인 기업의 경우, 자금조달 금리 상승 부담으로 이어져 재무 리스크가 심화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중소기업 상황은 더 심각하다. 올 들어 10월까지 법인 파산 신청 건수는 1583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6% 늘었다. 코로나19 이후 정부의 대출 만기 연장 및 상환 유예 조치로 버텨오던 중소기업과 스타트업들이 한계에 다다른 결과다.
중소법인 대출 연체율 역시 올해 9월 말 기준 0.68%로 전년 대비 0.16%포인트 올랐다. 자금 조달이 여의치 않을 경우, 파산하는 기업은 더 늘어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