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약품 임시 주주총회에서 박재현 사내이사(한미약품 대표이사)의 해임 안건이 부결되면서 박 대표 체제의 한미약품이 당분간 유지된다.
다만, 송영숙 한미약품그룹 회장·임주현 한미약품그룹 부회장·신동국 한양정밀 회장·킬링턴유한회사 등 4자연합과 임종윤 한미사이언스 사내이사·임종훈 한미사이언스 대표 등 형제 측과의 경영권 분쟁은 지속할 전망이다.
한미약품은 19일 서울 송파구 서울교통회관에서 임시주주총회를 열어 지주사인 한미사이언스가 주주 제안한 ▲박재현 사내이사(한미약품 대표이사), 신동국 기타비상무이사(한양정밀 회장) 해임 건과 ▲박준석 사내이사(한미사이언스 부사장) 및 장영길 사내이사(한미정밀화학 대표이사) 선임 건을 다뤘다.
이사 해임은 특별결의로 주주 의결권의 3분의 2 이상과 발행 주식 총수의 3분의 1 이상 찬성 요건을 모두 충족해야 하는 만큼 해임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다. 앞서 10.02%의 지분을 보유한 국민연금공단과 국내외 의결권 자문사들도 해임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
이날 임시주총에는 의결권이 있는 주식 총수 1268만214주에서 1021만9107주가 출석했다. 의결권이 있는 주식 총수의 80.59%가 참여해 보통결의 사항뿐만 아니라 특별결의 사항까지 적법하게 결의할 수 있는 요건을 갖췄다.
투표 결과 박 대표 해임 건에 찬성하는 주식 수는 출석 주식의 53.62%인 547만9070주에 그쳤고, 신 회장 해임 건도 출석 주식 수의 53.64%인 548만1320주만 찬성해 두 건 모두 부결됐다. 한미약품 이사회 수 상한이 10명인 만큼 해임 안건이 부결됨에 따라 신규 이사 선임의 건은 자동 폐기됐다.
현재 한미약품 이사회 구도는 임종윤·종훈 등 형제 측이 4명, 박재현·신동국 등 4자연합 측이 6명으로 이뤄졌다. 형제 측은 박 대표와 신 회장을 이사회에서 내보내고 형제 측 인사를 이사회에 입성시켜 한미사이언스의 핵심 계열사인 한미약품 이사회도 장악하려고 했지만 무산됐다.
이에 따라 한미약품그룹의 경영권 분쟁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올해 3월 한미사이언스 정기 주주총회에서 형제 측이 승리하면서 이사회 구성을 형제 측이 유리하게 5대 4로 만들었으나, 지난달 열린 한미사이언스 임시주총에서 신 회장이 이사회에 입성해 5대5 팽팽한 균형을 맞췄다.
4자연합과 형제 간 한미약품그룹 경영권 향배는 내년 정기주주총회에서 판가름 날 것으로 전망된다.
임종훈 대표는 지난달 기자간담회에서 “한미사이언스 이사회는 2025년, 2026년에 걸쳐 인적 교체가 이뤄진다. 이사회의 신임이 더욱 강력해질 것이며, 2026년 3월이면 완전한 경영권 확보가 가능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실제로 4자연합 측 인사로 구분되는 신유철·김용덕·곽태선 이사진의 임기가 2025년 3월 만료되고, 송 회장의 임기도 2026년 3월까지다.
하지만 4자연합 측이 한미사이언스 지분 구조에선 유리한 상황이라 쉽사리 결과를 예측하기 어렵다. 임 대표는 11월 한미사이언스 주식 105만 주를 블록딜로 매매했다. 당시 임 대표는 상속세 재원 마련을 위해 부득이하게 주식을 매각했다는 입장을 내놨다.
업계에 따르면 해당 주식은 4자연합 측으로 분류되는 사모펀드 운용사 라데팡스파트너스가 매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임종윤 이사도 상속세와 주식담보대출(주담대) 기간 만료로 ‘자금난’에 직면해 있다.
송 회장과 임 부회장도 상속세와 주담대 상환 기간 도래 부담을 겪고 있지만, 해당 지분은 신 회장과 킬링턴유한회사가 사들이며 4자연합은 더 견고해지고 있다. 4자연합의 한미사이언스 지분율이 더 커 내년 주총에서 4자연합의 승산이 더 높다는 관측도 나온다.
한편, 이날 임시주총 이후 박재현 대표는 기자간담회를 통해 “오늘 결과가 한미약품이 좋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결론지어져 기쁘다”고 소감을 전했다. 이어 그는 “이런 소모적인 임시 주총을 해야 되는 상황에 착잡한 심정도 든다. 이번 주총 결과를 통해 소모적인 논쟁보다 어떻게 발전해나갈지 고민하는 데 전력을 다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분쟁을 빨리 종식시키는 게 회사의 방향성에 도움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밝혔다.
향후 한미약품 방향에 대해서 박 대표는 “한미약품은 10년 내 매출 5조 원 달성, 영업이익 1조 원이라는 목표를 향해 달려갈 것”이라며 “지속적인 성장세를 유지하면서 중·장기적 미래 성장동력으로 추진하고 있는 사업에 속도를 더해 글로벌 한미로 나아가겠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