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제마진 회복 더뎌…고환율도 걸림돌
'화석연료' 외치는 트럼프, 호황 열쇠 될까
지난 3분기 일제히 적자를 낸 국내 정유 4사(SK이노베이션·GS칼텍스·에쓰오일·HD현대오일뱅크)의 실적 개선 기대감이 약해지고 있다. 수익성 지표인 정제마진이 좀처럼 회복되지 않는 가운데, 비상계엄과 탄핵 여파 등으로 환율마저 급등했기 때문이다.
29일 정유업계에 따르면 26일 기준 싱가포르 복합 정제마진은 배럴당 4.65달러로, 손익분기점인 4~5달러 부근을 맴돌고 있다. 정제마진은 석유제품 가격에서 원유 가격과 운임비 등을 뺀 이익이다. 3분기에는 정제마진이 3.6달러까지 내려가면서 정유 4사는 총 1조4592억 원의 영업손실을 냈다.
고환율도 발목을 잡고 있다. 비상계엄과 탄핵 여파로 1440원을 넘긴 원·달러 환율은 27일 장중 1487원 가까이 치솟으며 2009년 금융위기 이후 최고치를 기록하는 등 변동성이 커지고 있다. 정유사들은 원재료인 원유를 수입할 때 달러로 결제하기 때문에 수익성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4분기 실적 회복을 노린 정유업계의 한숨도 커진다. 경영 환경을 둘러싼 대내외 환경이 비우호적이기 때문이다. 다만 환율 측면에서는 2~3개월 전 장기 구매 계약을 맺었기 때문에 환율 변동이 당장 수익 구조에 영향을 미치진 않을 것으로 본다.
관건은 국제유가다. 환율이 높아도 국제유가가 하락하면 구매 비용이 낮아져 고환율 리스크가 어느 정도 상쇄된다. 국제유가가 높을 때도 시장 수급 상황에 따라 정유사들에게는 호재일 수 있다.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여파로 국제유가가 100달러 이상 급등했지만, 정제마진 개선으로 정유 4사가 사상 최대의 이익을 거둔 바 있다.
정유업계는 내달 출범하는 트럼프 2기 행정부에 주목하고 있다. 친환경 에너지를 축소하고 화석연료 회귀를 공언해온 만큼 석유·가스의 신규 개발이 이뤄질 수 있다. 미국이 원유 생산을 늘리고,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이 대러 제재를 완화할 경우 글로벌 공급량이 증가하며 국제유가가 하락할 여지가 크다.
정유사들은 단기적으로 재고평가손실이 커질 수 있지만, 시장의 수요·공급 환경이 우호적으로 변해 이익 개선 폭이 커진다. 트럼프 행정부가 캐나다 원유에 25% 관세를 예고한 만큼 한국 등 아시아 국가들이 반사 이익을 볼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환율 상승과 관련해선 회사마다 환 헤지(위험회피) 전략으로 변동성을 낮추고 있다"며 "트럼프 정부의 화석연료 회귀 정책이 정유업계에는 호재로 작용할 수 있지만, 중동 산유국의 증산 추이와 글로벌 수요에 따라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