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국무부가 27일(현지 시간) “우리는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및 한국 정부와 함께 일할 준비가 돼 있다”는 입장을 공표했다. 윤석열 대통령에 이어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이 국회에서 탄핵소추 된 데 대한 국내 언론 질의에 “한국이 헌법에 명시된 절차를 평화적으로 따르는 것을 목격했다”면서 긍정적으로 답한 것이다. 미 국방부도 “우리는 한국, 한국 국민, 민주적 절차 및 법치에 대한 지지를 다시 한번 강조한다”고 했다.
이에 앞서 여의도 국회에선 한 권한대행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192표 찬성으로 통과됐다. 권한대행 탄핵은 헌정사 초유의 일이다. 탄핵이 가능한 의결정족수에 대한 법적 명시규정도, 공감대도 없는 상태에서 원내 다수당인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이뤄진 탄핵소추였다.
여당인 국민의힘은 대통령 기준(200명)을 주장했지만 우원식 국회의장은 국무총리 기준(151명 이상)이라며 가결을 선언했다. 국민의힘은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하고 탄핵소추안 효력을 정지해 달라는 가처분을 냈다. 한 대행에게는 “직무를 유지해달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한 대행은 직무를 정지했다. 한 대행 체제 붕괴는 13일 만이다. 내각 책임제보다 안정적인 대통령제 국가의 정정 불안이 어지간한 내각제 국가보다 심하다. 87년 헌정 체제의 위기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정 리더십 불안도 증폭되고 있다. 엎친 데 덮친 격이다. 국제사회도 이를 주시하고 우려한다.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는 “한국 국회가 대통령을 탄핵한 지 2주도 지나지 않아 권력 서열 2위인 한 권한대행을 축출하기로 했다”면서 “리더십 위기가 심화했다”고 했다. 미 정부가 이 비상한 국면에 신뢰를 재확인하며 힘을 실어준 것은 다행이다. 하지만 우리 정치권과 정부가 헌법재판관 등 쟁점에 대해 합의점을 찾지 못하면 백약이 무효다.
국제사회가 주목하는 최 권한대행은 당장 ‘대행의 대행’ 체제라는 무거운 짐을 져야 한다. 새 직함은 ‘대통령 권한대행 겸 국무총리 직무대행 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다. 1인 3역이다. 안보·외교·경제는 물론이고 국내외 중대사도 다 감당해야 한다. 29일만 해도 제주항공 참사와 관련해 열린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회의에 참석해 “모든 관계기관과 협력해 구조와 피해 수습에 총력을 다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몸을 쪼개도 모자랄 것이다. 본연의 임무인 경제 컨트롤타워 역할은 또 어찌 수행할지 의문이다. 그런 판국에 정치적 난제에 대해 직접 결론을 내라고 압박하는 것은 억지고 무리다. 여야가 대승적 담판을 통해 결론을 내야 한다. 그래야 ‘대행의 대행’ 체제가 최 대행을 중심으로 국정 공백을 메울 수 있다.
가장 큰 책임감을 가질 쪽은 민주당이다. 윤석열 정부 출범 후 29건의 탄핵안을 발의했다. 본회의를 통과한 것만 헤아려도 13건이다. 한국 정치·정부가 이 지경이 된 것이 오로지 민주당 책임이라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민주당 책임이 없다고 하면 지나가는 소도 웃는다. 옛말에도 과유불급이라 했다. 안보·경제 충격파조차 안중에 두지 않는 폭주는 이제 접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