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환율에 탄핵정국 리스크…국내 증시 소외로 극심한 저평가
나스닥 31.38%ㆍ코스닥 -21.74%…전세계 주요국 중 한국만 하락
‘쏠림과 소외의 강화.’ 신영증권은 ‘상고하저’로 막을 내린 올해 국내 시장을 두고 이렇게 평가했다. 김학균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좋아 보이는 자산(미국 증시)에 쏠림이 생기면서 버블이 생기고, 소외받는 자산(국내 증시)에 대한 외면이 심화되면서 극심한 저평가가 만들어졌다”고 설명했다.
올해 국내 증시는 기분 좋은 출발을 보였던 상반기와 달리 하반기는 16년 만에 6개월 연속 지수 하락이라는 진기록을 다시 썼다. 시가총액 1위 삼성전자를 중심으로 기업들의 영업이익이 악화한 데다 1450원을 넘어선 고환율과 비상계엄 사태 등 정치적 리스크까지 겹친 탓이다. 특히 주요국 중 우리나라 증시만 하락했다는 점이 뼈아프다. 미국, 일본, 중국 등은 당연하고, 전쟁을 겪고 있는 러시아나 이스라엘 증시보다도 고꾸라져 체면을 구겼다.
30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코스피는 올해 9.63% 내린 2399.49에 마감하며 2400 문턱 아래서 마감했다. 코스닥은 21.74%나 하락한 678.19로 마쳤다. 코스피는 6개월 연속 하락했다. 6개월 연속 지수 하락은 코스닥 출범 후 증시 역사상 단 두 번(2000년 닷컴버블, 2008년 리먼브라더스 사태) 밖에 없었다. 2000년 닷컴버블 사태 때 코스피는 올해 하락과 똑같이 7월부터 12월까지 하락했으며, 2008년 리먼브라더스 사태 때는 그해 6월부터 11월까지 하락했다. 전 국민이 어려웠던 외환위기 시절에도 1997년과 1998년 각각 4개월 연속 하락이 이어졌을 뿐 이후엔 반등한 바 있다.
상반기에 코스피와 코스닥의 분위기는 좋았다. 증권가에서도 각각 ‘삼천피’(코스피 3000포인트), ‘천스닥’(코스닥 1000포인트)이라는 장밋빛 전망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코스닥의 경우 3월 26일 장중 922.57을 찍었고, 코스피는 7월 11일 장중 2896.43을 기록하며, 기대감을 높여갔다.
그러나 미국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의 금리 인하 기대감이 극에 달했던 증시는 오히려 실제 기준금리 인하가 발표된 9월 이전부터 꺾이기 시작했다. 특히 8월 5일은 미국발 경기 침체 공포에 이른바 ‘블랙먼데이’로 불리며 역대 코스피 하락 폭 순위 1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하반기 증시 하락을 주도한 건 외국인 투자자였다. 7월부터 이날까지 코스피 시장에서 21조 원 넘게 팔아치웠다. 외국인 코스피 보유 비중도 32.14%(이달 23일 기준)까지 떨어지며 올해 최저 수준을 기록 중이다. 7월 10일 기록한 고점(36.12%) 대비 4% 가까이 내려간 수치다. 외국인 투자자가 가장 많이 빠져나간 종목은 시장 시가총액 1위인 삼성전자였다. 하반기에만 자그마치 18조5168억 원을 던졌다. 코스피 전체 순매도 규모의 88%를 차지할 정도로 압도적이었다.
고환율도 시장에 큰 타격을 줬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12월 FOMC 회의에서 기준금리 인하 속도 둔화 가능성을 시사한 이후 달러화 강세가 두드러졌다. 여기에 비상계엄 사태가 불러온 탄핵 정국 등 국내 정치 불확실성까지 겹치면서 환율에 비상이 걸렸다. 일각에선 환율이 1500원대를 넘어갈 수 있다는 경고가 계속 나오고 있다. 외국인들의 자금 이탈이 더욱 심해질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국회가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가결했던 27일엔 원·달러 환율이 장중 1486원까지 넘어서며, 글로벌 금융위기였던 2009년 3월 16일(1488.5원) 이후 15년 9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한 달 새 원화 가치는 5% 떨어졌는데, 유로, 파운드, 위안 등과 비교했을 때 하락 폭은 3~7배에 달한다. 이날도 원·달러 환율의 주간 거래 종가(오후 3시 30분 기준)는 전날보다 5원 오른 1472.5원을 기록했다.
우리나라를 제외한 전 세계 주요 주식시장은 상승가도를 달렸다. 뉴욕증시 S&P500지수는 올 들어 지난주 마지막 거래일인 27일까지 25.18% 상승했다. 이 기간 다우지수는 14.07%,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지수는 31.38% 각각 상승했다. 이대로 끝난다면 뉴욕증시는 2021년 이후 최고의 한 해를 기록하게 된다.
올해 뉴욕증시는 탄탄한 경제를 기반으로 상승세를 유지했다. 경제성장률은 1분기 1.6%에서 2분기 3%, 3분기 3.1%로 꾸준히 올랐다. 인플레이션율은 연준 목표치인 2%를 향해 하락했고 소비도 호조였다. 여기에 엔비디아를 비롯한 인공지능(AI) 수혜주가 투자자들의 지지를 받으면서 주요 기술주가 상승장을 견인했다. 11월 초 치러진 대통령선거도 주가에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당선되면서 친시장 정책을 펼칠 것이라는 기대에서다.
일본 도쿄증시 닛케이225 평균주가(닛케이지수)는 연초 버블 붕괴 후 34년 만에 처음으로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정부 주도하에 기업들이 자사주 매입 등 주주 친화 정책을 펼친 효과 덕분이다. 여기에 엔저가 이어지면서 수출주 중심으로 강세를 보이면서 닛케이지수는 4만 엔 선을 돌파하기도 했다. 올해 상승 폭은 19%가 넘는다. 증시 훈풍 속에 시가총액이 10조 엔(약 93조 원)을 넘는 기업이 18개사로 역대 최다를 찍었다. 버블 경제 시기인 1989년 말에는 3곳에 불과했다. 중국 상하이증시는 정부 경기부양책 기대감에 약 15% 상승했고, 범유럽증시 벤치마크인 스톡스유럽600지수도 올해 5.89% 올랐다.
한국거래소는 “상반기 코스피 등락률은 5.4%로 21개국(G20+대만) 중 12위였으나 하반기 들어 낙폭이 확대되면서 주요국 대비 상대적 약세를 보이며 올해 전체 18위(27일 기준)를 기록했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