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진 네이버 창업자가 이사회 의장으로 전격 복귀한다. 글로벌 사업 집중을 이유로 의장 자리에서 내려온 지 7년 만이다. 결정적 계기는 인공지능(AI) 충격이다. 미국은 스타게이트 추진 등으로 주도권 굳히기에 나섰고, 중국은 급성장하는 AI 기술력을 앞세워 미국 아성에 도전하고 있다. AI 패권 경쟁에 기름을 끼얹은 돌출 재료도 있다. 중국 신생 AI 스타트업 딥시크의 급부상이다. 미·중만이 아니다. 한국을 비롯한 경쟁국들의 위기감도 하늘을 찌른다.
이 창업자 복귀는 네이버의 AI 경쟁력을 빠르게 끌어올리겠다는 의지로 해석된다. 네이버는 한국어와 한국인에게 특화된 거대언어모델(LLM)인 하이퍼클로바와 생성형 AI인 하이퍼클로바X를 보유하고 있다. 다만 비용과 성능 모두 빅테크에 뒤처지는 것으로 평가되는 만큼 향후 과제가 산더미다.
이 창업자는 ‘은둔의 경영자’란 세평을 싫어하지만, 외부 활동이 적은 것이 사실이다. 전문경영인을 전면에 내세우고 뒤로 물러났다. 그가 복귀를 선택한 것은 AI 산업 전반에 가해지는 압박감을 빼고는 설명할 수 없는 일이다. 어깨가 여간 무겁지 않다. 네이버만이 아니라 한국 첨단산업 전반에 활력을 불어넣으려면 네이버가 중시하는 ‘소버린(Sovereign·주권) AI’ 등에서 가급적 속히 구체적 성과를 일궈내야 한다.
국가별 AI를 뜻하는 소버린 AI 기술은 LLM 기술력을 바탕으로 현지 문화와 언어에 최적화된 AI 모델을 구축하는 것이 핵심이다. 글로벌 영향력을 가진 빅테크에 맞서 비영어권 국가가 자국 환경에 맞는 AI 모델을 구축하는 전략의 중요성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네이버는 ‘AI 제국주의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고 그간 거듭 경고음을 냈다. 글로벌 빅테크가 자기들 고유의 생성형 AI를 이식하고 있다는 문제의식이 깔린 경고음이다. 이 관점에 따르면 한국은 AI 패권국이 되느냐 속국이 되느냐 하는 갈림길에 서 있다. AI 속국으로 전락하는 재앙은 결단코 피해야 한다.
근거 없는 낙관은 금물이다. 한국의 AI 성숙도는 글로벌 ‘2군’으로 분류된다. 보스턴컨설팅그룹(BCG)이 내놓은 ‘AI 성숙도 매트릭스’ 보고서에서 선두 그룹인 ‘AI 선도국’이 아닌 ‘AI 안정적 경쟁국’으로 분류됐다. 우리의 AI 투자나 법·제도적 준비, 인재 양성 등을 보면 2군으로 밀리는 것은 당연하다. 경쟁 속도가 날로 빨라지는 만큼 한번 낙오하면 반영구적으로 길을 잃게 될지도 모른다. 국가적 각성이 필요하다. 기업에만 맡길 일이 아니다.
우리 고유의 모델로 경쟁력을 획득하는 것은 쉬운 과제가 아니다. 맨주먹으로 가능하지도 않다.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5일 가칭 ‘첨단전략산업기금’을 산업은행에 신설하겠다고 했다. 최소 34조 원 규모로 조성된다. 유상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도 전날 “연내 고성능 그래픽처리장치(GPU) 1만5000개를 구입하겠다”고 했다. 정부 지원에 박차를 가하겠다고 한 것이다.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고 했다. 민관 원팀으로 시너지 효과를 일궈내는 협업이 중요하다. 그렇게 우리 AI 생태계를 옥토로 바꿔나갈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