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 상대로 무리한 요구 가능성
한국도 대응책 원점 재검토 시급해

특히 트럼프 1기와 2기의 가장 큰 차이점은 19세기 제국주의를 방불케 하는 영토 확장 의욕을 노골적으로 드러낸다는 점이다.
그린란드를 사고 파나마운하를 돌려받으며 캐나다를 미국의 51번째 주로 만들겠다는 주장이 바로 그것이다. 심지어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주민을 다른 곳으로 강제 이주시키고 이곳을 미국이 점령해 ‘중동의 리비에라(지중해 연안 고급 휴양지)’로 개발하겠다는 구상을 내놓아 중동 전역을 뒤흔들고 있다.
외교 전문가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이런 주장들에 대해 협상을 위한 지렛대 정도로 이해하고 있다. 실제로 이는 어느 정도 효과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일례로 마코 루비오 미국 국무장관이 취임 후 첫 방문지로 파나마를 방문하자마자 호세 라울 물리노 파나마 대통령은 운하 양단의 항구를 관리하는 홍콩계 기업과의 계약 해지 검토, ‘현대판 실크로드’인 ‘일대일로’ 탈퇴까지 미국의 눈치를 보는 방안을 줄줄이 내놓았다.
덴마크도 미국 측이 제기한 안보 우려를 누그러뜨리고자 북극 지역에 대한 방위비 증가, 그린란드 주둔 미군 확대 등 온갖 대책을 검토하며 안간힘을 쓰고 있다.
관련 뉴스
트럼프 대통령이 단지 말만 꺼냈을 뿐인데도 이 정도 성과가 나온 것이다. 지난해 대통령선거에서 트럼프를 뽑았던 미국 유권자들이라면 ‘국뽕’에 벅차오를 수 있겠다.
그러나 이를 단지 협상 카드로만 이해하기에는 트럼프의 주장이 진지하고 그 발언 수위도 너무 높은 것처럼 보인다. 19세기의 해묵은 제국주의적 팽창주의를 21세기에 다시 살리려는 트럼프의 진정한 동기를 살펴봐야 한다. ‘러시모어’라는 키워드가 트럼프 2기 모든 움직임을 근본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할지도 모른다.
미국 역대 대통령 중 가장 존경받는 4명의 얼굴이 새겨져 있는 러시모어산을 트럼프 대통령이 처음으로 언급하였을 때는 2017년 7월 한 집회에서였다. 2020년 8월에는 자신의 얼굴이 러시모어산에 새겨진 것처럼 구도가 잡힌 사진을 트위터에 올리기도 했다.
당시는 이를 농담이나 트럼프 특유의 허풍으로 받아들였지만,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의 궁극적인 꿈이 이것이라면 어떤 일이 생길 것인가. 트럼프가 역사상 가장 위대한 대통령 중 하나로 남겠다고 다짐한 이상 조지 워싱턴, 에이브러햄 링컨과 같은 업적을 달성하려면 그린란드와 파나마운하를 먹고 관세전쟁을 통해 미국 제조업을 부활시키려 할 것은 불 보듯 뻔하다. 협상에서 양보만 한다고 얌전히 넘어가지는 않을 것이라는 의미다.
당연히 세계 각국은 트럼프의 요구를 절대 곧이곧대로 들어줄 수 없겠지만, 그만큼 조 바이든 시대였다면 상상하기 힘든 양보를 미국에 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트럼프로서는 무엇이 됐든 좋은 일이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특히 트럼프가 한국이라는 이전부터 탐탁지 않게 여겼던 상대에 대해 얼마나 무리한 요구를 할지 상상이 가지 않는다. 트럼프 대통령은 대선 유세 당시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으로 기존의 10배에 달하는 연간 100억 달러(약 14조5200억 원)를 주장했다. 막대한 관세 폭탄도 기다리고 있다. 심지어 이런 것들은 한국이 들어줄 수 있는 가장 쉬운 요구사항이 될 가능성이 크다.
삼성전자의 최첨단 반도체 공장을 평택이 아니라 텍사스주에 건설하라고 요구할 수도 있다. 1기 때 삼성, LG전자의 세탁기에 대해 세이프가드를 발동한 것처럼 이번에는 현대차를 그 타깃으로 할 가능성도 있다. 북한 위협을 해소한다는 명목으로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할 위험도 있다. 그러니 한국 정치권과 정부는 지금이라도 트럼프 대통령에 어떻게 대응할지를 놓고 원점부터 고민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