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토부 대책은 재발방지 효과 의문
30% 충전제한 등 국제표준 맞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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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튬이온 배터리의 기내 반입 규정이 강화된다. 충전 단자에 절연 테이프를 붙이거나 비닐 지퍼백에 넣어서 탑승객이 직접 휴대해야 하고, 가방에 넣어 선반에 올려두는 것은 금지된다. 에어부산 화재에 놀란 국토교통부가 11개 항공사 대표까지 소환해서 요란하게 개최한 ‘항공안전 강화 결의대회’에서 공개한 대책은 충격적일 정도로 부실하다. 확인이 번거롭다는 이유로 그동안 항공사와 공항이 사문화한 기존의 ‘안전 규정’을 다듬은 것이라고 한다.
비닐 지퍼백(파우치)과 절연 테이프로 배터리 충전 단자의 ‘외부’ 합선에 의한 화재를 예방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런데 요즘 사용하는 전자 제품이나 보조배터리의 충전 단자는 모두 틈새가 매우 좁은 함몰형(USB형)이다. 전기가 통하는 금속성 물체에 의한 외부 합선을 걱정할 이유가 없는 구조인 셈이다. 실제로 배터리 충전 단자의 외부 합선으로 발생한 화재의 사례는 찾아보기 어렵다.
리튬이온 배터리의 화재는 대부분 ‘내부’ 합선에 의한 열폭주로 발생한다. 외부에서 가해진 무리한 압력·충격·열에 의해서 배터리 내부의 분리막이 손상되면서 발생하는 내부 합선이 문제라는 뜻이다. 요즘 늘어나고 있다는 객실 의자 틈새에 낀 배터리의 화재도 외부 압력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다. 과충전·과방전에 의한 분리막 파손이나 분리막·전해액의 품질 불량도 내부 합선의 원인이 된다. 인천 청라아파트 전기차 화재에서처럼 분리막 손상이 화재로 이어지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리기도 한다.
그런데 비닐 지퍼백이나 절연 테이프는 외부의 압력·충격·열을 차단하지도 못하고, 과충전이나 배터리 불량에 의한 분리막 파손을 막아주지도 못한다. 국토부의 안전 강화 방안이 배터리의 내부적 요인에 의한 화재 예방에는 무용지물이라는 뜻이다. 국토부와 화재·재난 전문가들의 전문성과 상식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방증이다.
배터리의 화재 예방 대책에는 리튬이온 배터리의 구조적 특성이 반영되어야만 한다. 충전이 가능한 2차 배터리인 리튬이온 배터리는 산화·환원 반응을 이용하는 전통적인 배터리(전지)와는 전혀 다른 첨단 기술 제품이다. 1970년대에 리튬이온 배터리의 개념을 처음 개발한 미국의 스탠리 휘팅엄과 존 구디너프, 그리고 1991년 소니의 상용화를 가능하게 만들어준 일본의 요시노 아키라가 노벨 화학상을 받은 것이 고작 5년 전의 일이었다.
리튬이온 배터리는 세상에서 가장 가벼운 금속인 리튬의 양이온을 이용한다. 충전 과정에서 흑연과 같은 층상(層狀) 구조를 가진 음극(-극)에 모아 두었던 리튬 양이온이 전해질을 통해 양극(+극)으로 이동하면서 만들어지는 전류를 이용한다. 음극에 모아 둔 양이온이 양극으로 함부로 흘러가지 못하도록 막아주는 역할을 하는 ‘분리막’이 리튬이온 배터리의 핵심 기술이다. 분리막을 외부적 요인이나 품질 결함으로 쉽게 손상되지 않도록 만들어야 한다.
리튬이온 배터리의 화재를 예방하는 일이 전혀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리튬이온 배터리의 화재 가능성이 ‘충전율’에 따라 높아진다는 사실을 주목한다. 완전히 방전된 배터리에서는 화재 발생 가능성이 매우 낮아진다는 뜻이다. 국제민간항공기구(ICAO)가 2016년부터 화물 전용기에 적용하고 있는 ‘30% 이하 충전율’ 규정이 바로 그런 과학적 사실을 근거로 마련된 것이다. 실제로 화물기로 수송하는 리튬 이온 배터리에서 화재가 발생한 경우는 없었다. 30% 이하 충전율 제한이 승객에게는 조금 불편할 수도 있겠지만 끔찍한 화재의 예방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감수할 수 있는 일이다.
시중에 유통되고 있는 보조배터리의 품질 관리도 강화해야 한다. 소비자도 ‘싼 게 비지떡’이라는 속담을 잊지 말아야 한다. 외부의 압력을 충분히 견딜 수 있어야 하고, 과충전 방지 회로도 꼭 필요하다. 국가기술표준원이 나서야 할 일이다. 국토부가 2022년 국내에서 생산·유통되는 보조배터리의 품질 관리를 유엔의 기준에 맞춰달라는 ICAO의 요청을 기술표준원에 전달하지 않고 섣부르게 무시해버렸던 것은 심각한 실수였다.
리튬이온 배터리의 화재에 대한 엉터리 뉴스도 바로 잡아야 한다. 리튬이온 배터리용 소화기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전기차 화재에 사용하는 것과 같은 원리의 ‘침수조(浸水槽)’가 훌륭한 소화 장비다. 화재가 발생한 배터리를 침수조의 물속에 넣어버리면 안전하게 진압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