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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및 자동차 보조금 재협상 추진
삼성전자, 하이닉스, 현대차 촉각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세계 각국에 대한 상호 관세 부과를 공식화한 데 이어 자동차와 반도체에도 추가 관세를 부과할 것을 시사하면서 국내 완성차 및 반도체 업계가 바짝 긴장하고 있다.
특히 관세 도미노가 현실화될 경우 기업들은 원자재 비용 증가, 대미 수출 타격, 미국 내 투자 비용 증가 등 연쇄적인 문제를 겪을 공산이 크다. 반도체 기업은 물론 완성차 업체들까지 대미 협력 강화 등 미국과의 접점을 넓히고 있지만 뾰족한 대응책을 찾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16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13일(현지시간) 백악관 집무실에서 ‘상호 무역과 관세(Reciprocal Trade and Tariffs)’라는 대통령 각서에 서명하면서 “미국은 다른 국가들이 부과하는 만큼 공정하게 관세를 부과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자동차 관세도 곧 발표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상호 관세는 상대국이 자국 제품에 부과하는 관세 수준과 동일하게 수입품에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의미다. 한국은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맺고 있어 대부분 분야에서 무관세를 유지하고 있지만, 비관세 장벽 등을 이유로 상호관세를 부과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앞서 철강과 알루미늄 제품에 대해 예외나 면제 없이 25%의 관세를 부과한 것처럼, 대미 수출 흑자 규모가 큰 자동차에도 추과 관세를 부과할 가능성이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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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분야에 관세 부과가 현실화되면 국내 기업들은 대미 수출 타격, 원자재 비용 등 여러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KB증권에 따르면 자동차에 10% 관세 적용 시 현대차와 기아의 영업이익은 연간 1조9000억 원, 2조4000억 원 줄어들게 된다. 철강 등에 관세 부과로 인해 원료 조달 비용이 늘어나면 수익성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
업계 관계자는 “국내 완성차 기업들에는 미국 시장이 핵심적인 수출 시장인 만큼 관세 부과로 인한 영향력은 매우 클 것”이라면서 “다만 업계 내에서는 현 상황을 돌파할만한 뾰족한 해결책이 없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현대자동차그룹은 미국 현지 생산 확대, 대미 협력 강화 등 다각적인 대응에 나서고 있다. 현대차는 국내 주요 기업 중 유일하게 트럼프 대통령 취임식에 100만 달러(약 14억7000만 원)를 기부했고, 그룹 계열사 현대제철은 미국에 대형 제철소를 신규로 짓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최근 정의선 회장은 미국 출장길에 올라 트럼프 대통령의 장남인 도널드 트럼프 주니어와 ‘골프 비즈니스’ 회동을 하기도 했다.
그룹은 현재 시범 가동 중인 메타플랜트 아메리카(HMGMA) 공장의 본격적인 운영을 통해 미국 내 생산도 연간 100만대 수준으로 늘릴 방침이다. 최근 출시한 대형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아이오닉 9’도 미국 판매용은 모두 HMGMA에서 생산하기로 했다.
다만 자동차가 관세 조치에서 면제될 가능성도 현재로선 존재한다. 마이크 존슨 미 하원의장은 로이터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자동차, 의약품 등 4개 품목이 상호관세 부과 대상에서 제외될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이호근 대덕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미국 공장 내에서 생산 라인을 늘리거나 자동차 분야에 추가 관세를 유예받아도 철강에 대한 관세 부과로 생산 원가가 상승하는 건 부담”이라면서 “단기적인 해결책이 있는 부분이 아니어서 장기적으로는 완성차 업계 내에 고심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반도체 업계도 비상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미국 시장에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데다 중국에 반도체 공장을 운영하고 있어 이번 조치가 기업 전략과 글로벌 공급망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
현재 한국 반도체 기업들은 미국 주요 IT 기업들에 메모리 반도체를 공급하고 있다. 특히 클라우드 서비스와 인공지능(AI) 시장의 확대로 인해 미국 내 반도체 수요가 꾸준히 증가하는 상황에서, 한국산 반도체에 추가 관세가 부과된다면 가격 경쟁력이 약화될 수밖에 없다.
트럼프 행정부가 중국에서 생산되는 애플과 삼성 제품에도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언급한 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중국 내 주요 생산시설을 운영하고 있으며, 특히 SK하이닉스는 중국 우시에 대규모 D램 생산 공장을 보유하고 있다.
현재 미국의 대중(對中) 반도체 규제에 따라 삼성과 SK하이닉스는 중국 내 공장 운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0ㅐ추가로 미국의 관세 조치가 더해지면 한국 기업들은 중국 생산시설을 유지할지, 새로운 대안을 모색할지 결정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미국이 중국에서 생산된 반도체에 높은 관세를 부과할 경우, 한국 기업들은 비용 상승을 감수해야 하거나 미국 내 생산시설을 확대하는 결정을 내려야 할 수도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바이든 행정부 당시 도입된 반도체법(Chips Act) 보조금 지급 조건을 재협상하겠다고 밝힌 점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불확실성을 가중시키고 있다.
반도체법에 따라 삼성과 SK하이닉스는 미국 내 공장 건설을 추진하며 보조금을 신청한 상태다. 삼성전자는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시에 대규모 반도체 공장을 짓고 있으며, SK하이닉스도 미국 내 반도체 패키징 공장 설립을 계획 중이다.
하지만 트럼프 행정부가 보조금 지급 조건을 변경할 경우, 한국 기업들이 기대했던 지원 혜택이 줄어들거나, 보조금을 받기 위한 추가적인 미국 내 투자 요구가 생길 가능성이 있다.
이미 바이든 행정부가 보조금을 지급하는 대가로 ‘초과이익 공유’ 및 ‘기술 유출 방지’ 등의 강력한 조건을 내건 바 있다. 트럼프 행정부가 여기에 더해 미국 내 생산 비중을 더욱 확대하도록 요구한다면, 삼성과 SK하이닉스는 추가 투자 부담을 안게 될 가능성이 크다.
국내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삼성과 SK하이닉스는 이미 미국 내 반도체 투자에 상당한 금액을 쏟아붓고 있다”며 “보조금 계약이 재협상될 경우 추가적인 투자 요구가 따를 가능성이 높고, 이는 기업들의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