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시각] 美 러스트벨트의 절망死

입력 2025-02-1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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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정수 자본시장부장. 조현호 기자 hyunho@
▲임정수 자본시장부장. 조현호 기자 hyunho@
‘절망사(死)’. 막다른 절망적 상황에 처한 사람이 스스로 삶을 포기하는 것을 일컫는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가혹한 관세 정책은 미국인들의 절망사가 한 원인으로 작용했다. 폭탄 관세 정책의 최초 설계자로 알려진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전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는 그의 저서 ‘자유무역이라는 환상(No Trade Is Free, 무역은 공짜가 아니야)’에서 90년대와 2000년대 초반 미국의 현실을 묘사하면서 이 슬프고도 처절한 표현을 썼다.

라이트하이저는 과거 미국의 핵심 공업지역이었다가 쇠락한 ‘러스트벨트’의 한 중소도시 ‘애쉬타불라’에서 나고 자랐다. 의사 부친을 둔 그는 어릴 때부터 부유했다. 친구들도 친구의 부모들도 대부분 직장을 갖고 중산층의 삶을 살았다. 빈부격차는 있었지만, 일 할 의지와 성실성만 있으면 누구든 심각한 빈곤에 빠질 염려는 없었다. 인근 도시와 주(州)들은 디트로이트의 자동차 산업을 중심으로 철광석 광산, 제철 및 제련, 기계, 자동차부품, 전자제품 공장 등이 연결된 거대한 제조업 생산기지 역할을 했다. 제조업뿐 아니라 서비스업 일자리도 풍성했다.

하지만 자유무역협정(FTA)이 확산하면서 공장이 아시아와 중남미 개도국으로 빠져나가는 오프쇼어링(Offshoring)으로 상황은 급속도로 악화했다. 그래서 그에게 자유무역은 지역 사람들의 삶의 기반을 앗아간 원흉이다. 미국의 제조업이 철저하게 무너져 내리게 만든 분기점으로 중국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을 꼽는다. 그는 “자유무역은 미국인들이 TV를 싸게 사기 위해 생존의 원천인 제조업 공장과 일자리를 해외에 내어 준 미국의 최대 실정이다. 결국, 미국인들은 좋은 차를 씨게 사기는커녕 생필품을 살 돈도 벌지 못하게 됐다"고 평가했다.

라이트하이저는 미국의 암울한 상황을 미국의 사회경제학자 앤 케이스와 앵거스 디턴의 ‘절망사 연구’의 통계로 요약했다. 대학 교육을 받지 못한 백인 중년 중 1999~2013년 간경변 사망자는 50%, 자살은 78%, 알코올 및 약물 과다로 인한 사망은 323% 증가했다는 내용이다. 2014~17년에도 절망사는 계속 증가해, 미국인의 기대 수명이 1918년 독감 대유행 이후 100여 년 만에 처음으로 감소했다는 사실까지 덧붙였다.

그는 2016년 미국 USTR 대표를 맡아달라는 트럼프의 제안에 ‘평생을 바쳐 준비해 온 투쟁의 기회’라고 스스로 정의했다. 트럼프 1기 행정부 4년을 하루 16시간 주 7일을 근무하겠다는 각오도 표했다. 제조업 일자리를 복원하려는 그의 치열한 노력은 트럼프 1기 행정부, 조 바이든 정부까지 이어졌고, 트럼프 2기 행정부에서는 더욱 강화된 모습을 띠고 있다.

치열한 투쟁을 각오한 그들의 위대한 미국(Great America) 복원 계획은 장기간 지속해서 추진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무지막지한 관세 정책은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는 게 중론이다. 우악스러워 보이더라도 계속 밀어 붙일만한 충분한 이유와 명분, 힘이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제조업 유치 전략인 온쇼어링(Onshoring)과 그에 따른 일자리 증가는 상대국인 우리에게는 오프쇼어링이며 일자리 감소를 의미한다. 고율 관세는 우리나라의 핵심 돈벌이 수단인 수출에 제약 요인이 될 수밖에 없다. 관세를 완전히 피해갈 수 있다면 좋겠지만, 불가능해 보인다. 줄 거 주고 받을 거 받는 ‘거래의 기술’을 발휘해 피해를 최소화하면서 기회를 찾는 방법이 최선이다.

리더십과 전략이 절실한 엄중한 시기다. 정부 공백, 정치적 분열, 전략의 부재로 인한 각개격파 상황이 장기화하면서 점차 두려움이 커진다. 여수 광양이, 울산 창원 거제가, 포항 구미가, 천안 아산이, 평택 당진이, 수원 이천이 미국 러스트밸트의 절망사 상황을 맞이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앞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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