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치권의 국민연금 자동조정장치 도입 논의를 놓고 노동·시민단체들의 반발이 커지고 있다. 거센 압박에 자동조정장치 조건부 수용 의사를 밝혔던 더불어민주당의 입장도 모호해졌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은 24일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최근 국정협의회에서 소득대체율 44%를 전제로 자동조정장치 수용 의사를 밝힌 데 대해 “민주당이 국민의힘과 내란 말고는 다를 게 없다면, 정권교체의 의미가 무엇이냐”고 비판했다. 공무원노동조합총연맹(공노총)도 “국민의 삶과 권리를 지키기 위한 싸움에 어떠한 퇴보도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앞서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과 국민연금공단 노조, 참여연대도 내 자동조정장치 도입을 ‘내란정부 연금개악 핵심’이라고 주장하며 민주당이 자동조정장치 수용 시 투쟁을 예고했다.
노동·시민단체들의 반발에 민주당의 입장도 모호해졌다. 민주당은 ‘자동조정장치 도입에 긍정적인 입장을 내비쳤던 이 대표가 ‘없던 것으로 하자’고 밝혔다’는 언론 보도에 대해 “국정협의체에서 국민연금 자동조정장치에 대한 논의가 있었으나, 결론에 이르지 못했다. 결론이 없는 만큼 백지상태에서 논의하는 것”이라고 해명했다. 애초에 자동조정장치 도입이 결정된 바 없으니, 이 대표와 민주당이 말을 바꿨다는 것도 성립하지 않는단 논리다.
자동조정장치는 경제·인구 등 제반여건 악화로 국민연금 지속가능성이 떨어지면 지급액을 자동으로 조정하는 장치다.
소득대체율 40%를 유지하려면 필요한 보험료율은 19.7%인데, 현재 수급자들은 가입 기간 소득의 3~9%만 보험료로 내고 45~70%의 소득대체율을 적용받고 있다. 그 결과로 1800조 원의 미적립부채가 쌓였다. 국민연금 적립금을 항구적으로 유지하려면 현시점에서 보험료율을 25% 이상으로 높여야 한다. 소득대체율 하향은 중장기적으로 신규 수급자의 연금액만 낮추기 때문에, 기존 미적립부채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 이 때문에 제안된 게 막대한 ‘가성비’를 누리는 현재 수급자의 연금액을 깎는 자동조정장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에선 24개국이 도입했다.
다만, 노동계의 반발이 심하다. 한국·민주노총은 지난해 공론화 결과를 내세워 자동조정장치 도입 없는 ‘보험료율 13%, 소득대체율 50%’만 요구하고 있다. 시민단체인 참여연대는 한국·민주노총, 한국여성단체연합과 ‘공적연금 강화 국민행동(연금행동)’으로 연대하고 있다. 참여연대 소속 전문가들은 교수라는 지위를 내세워 ‘이익단체’인 양대 노총의 주장을 정당화하고 있다.
민주당이 노동계의 압박에 못 이겨 자동조정장치 없는 소득대체율 상향형 연금개혁을 밀어붙이거나, 비슷한 방향으로 여·야가 ‘적당히’ 타협하면 국민연금 적립금 소진은 6~7년 미뤄지나 적립금 소진 후 미래세대가 부담해야 할 보험료율(부과방식 비용률)은 40%에 육박하게 된다.
이 때문에, 연금연구회 등 국민연금의 지속가능성을 강조하는 전문가들은 소득대체율 동결을 전제로 한 자동조정장치 도입을 연금개혁의 핵심으로 본다. 소득보장파로 분류되는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도 우선은 보험료율 인상을 처리하고, 노후소득 문제는 가입기간 확대를 통해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