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에 맞설 준비돼있어”...항전 의지
지지자 “이스라엘에 죽음을! 미국에 죽음을!”

레바논 무장단체 헤즈볼라의 수장이었던 하산 나스랄라가 사망한 지 5개월 만에 대대적인 장례식이 치러졌다.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 인근에서 열린 장례식에 추모 인파 수십만 명이 운집하면서 헤즈볼라가 건재를 과시하기 위한 기회로 삼으려 한다는 해석도 나왔다. 나스랄라는 지난해 9월 이스라엘군의 표적 공습으로 사망했다.
23일(현지시간) AP통신에 따르면 이날 나스랄라와 그의 사촌 하심 사피에딘의 장례식이 베이루트 교외의 대형 경기장에서 열렸다. 사피에딘도 지난해 10월 이스라엘군 공습으로 숨졌다. 나스랄라는 베이루트에, 사피에딘은 레바논 남부 고향에 각각 안장된다.
한 레바논 관리는 AP에 장례식 참가자 수를 45만 명으로 추정했다. 친(親)헤즈볼라 성향의 방송 채널인 알마야딘은 참석자 수를 140만 명이라고 주장했다. 헤즈볼라는 건재함을 과시하기 위해 지지자들에게 장례식 참석을 촉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참가자 수는 수만명으로 추정된다.
나스랄라와 사피에딘의 관이 경기장 주변을 행진하고 이동하는 동안 지지자들은 스카프나 옷, 반지 등을 던지며 애도했다. 운구자들은 축복을 가져다주는 행위로, 이들이 던진 물품을 관에 문지른 뒤 다시 던졌다. 지지자들은 “이스라엘에 죽음을! 미국에 죽음을!”, “당신의 부름에 응답한다, 나스랄라!” 등의 구호를 외치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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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식에는 모하마드 바게르 칼리바프 이란 의회 의장과 압바스 아락치 외무장관 등도 참석했다. 헤즈볼라 새 수장인 나임 카셈 사무총장은 장례식에 직접 참석하는 대신 TV 연설을 통해 “당신(나스랄라)의 뜻을 지킬 것”이라며 “폭군 미국이 우리나라를 통제하는 것을 수용하지 않는다. 저항은 끝나지 않았고 이스라엘에 맞설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헤즈볼라는 경기장 외부에 대형 스크린을 설치해 경기장 안에 들어오지 못한 지지자들도 장례식을 볼 수 있도록 생중계했다. 장례식이 진행되는 동안 보안 조처를 위해 도시 주요 도로를 폐쇄하고, 베이루트 공항을 오가는 항공편을 4시간가량 중단시켰다.
그러나 장례가 엄수되는 동안 이스라엘 공군 전투기가 베이루트 상공을 저공 비행해 긴장이 고조됐다. 이스라엘군은 장례식 전후 몇 시간 동안 레바논 남부와 동부에서 공습을 감행하기도 했다.
이스라엘 카츠 이스라엘 국방장관은 성명을 통해 “장례식장 상공을 비행하는 전투기들을 통해 명확한 메시지를 보낸다”며 “이스라엘을 전멸시키고 공격하겠다고 위협하는 자는 누구든 종말을 맞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나스랄라는 헤즈볼라 창립자 중 한 명으로 30년 이상 헤즈볼라를 이끌었다. 생전 이라크, 예멘, 팔레스타인 파벌을 포함한 이란 주도의 중동 무장세력 ‘저항의 축’에서도 광범위한 영향력을 행사한 인물이다. 그만큼 나스랄라의 사망 이후 헤즈볼라는 레바논 내부에서도 정치적 장악력을 잃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지난해 말 헤즈볼라의 지원 통로 역할을 하던 시리아의 바샤르 알아사드 정권이 붕괴, 올해 초에는 친서방 성향의 조제프 아운이 레바논 대통령이 선출되면서 세가 더욱 기울었다. 내각에서도 정부 정규군만이 레바논 영토를 방어할 권리가 있다는 성명을 채택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