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에 불과한 MBK의 ‘본업 경쟁력’[데스크 시각]

입력 2025-03-10 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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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유선 생활경제부장
▲석유선 생활경제부장

“홈플러스 대체 어쩐대? 식품사들이 오늘부터 공급 중단하고 납품 안한다는데?”

대형마트업계에서 근무 중인 지인은 5일 대뜸 이렇게 물어왔다. ‘서로 하루 이틀 거래를 한 것이 아닐 텐데.’ 설마 하는 마음이 무색하게 이내 현실임을 알게 됐다. 출입기자에게 취재 오더를 한 지 반나절 만에 팩트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국내 식품업계 1위 CJ제일제당을 비롯해 농심, 오뚜기, 동서식품, 롯데웰푸드, 롯데칠성음료(주류 제외) 등이 잇달아 납품을 중단하거나 물량을 줄이는 방식으로 대응 중이었다. 홈플러스가 애초 약속한 납품 대금 정산을 지연하고 있거나, 지연될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한 때문이었다. 대형마트 업계 2위 홈플러스가 4일 기습적으로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를 개시하면서 국내 굴지의 식품사들도 납품 대금 정산을 불신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6일 오전 본지 단독 보도([단독] “상품 못 주겠다” 식품사들, 홈플러스에 줄줄이 ‘신규공급 중단’)를 기점으로 논란이 일파만파 확산하자, 홈플러스는 당일 오후 “일반 상거래 채권(물품 대금)은 100% 변제 대상”이라는 입장문을 내며 사태 진화에 나섰다. 기업회생절차 개시 결정으로 인해 일시적으로 정산이 지연됐을 뿐이며, 3월 영업을 통해 3000억 원의 순 현금 유입액이 들어오면 기존 잔고에 더해 현금 자산이 6000억 원을 웃돌 것이라고 자신했다.

하지만 납품사 반응은 냉랭하다. 식품업계 한 관계자는 “솔직히 지금 홈플러스의 대금 지급이 제대로 될 거라 믿는 업체는 없다”고 했다. 그는 “애초 기업회생 신청 명분이 신용등급 하락에 따른 선제적 조치라 했지만, 홈플러스의 재무 상태는 이미 곪은 대로 곪은 게 터진 상황”이라고 손사래를 쳤다. 그런데도 식품업계는 소비자 불편을 최소화하기 위해 납품 중지를 멈추고 거래 정상화를 재개했다. 그런데도 일부 점포에선 물량 공급이 원활하지 않아 빈 매대가 보인다는 후문이다.

납품 중단 사태는 홈플러스의 자체 브랜드(PB) 협력사까지 번지고 있다. 혹여 제조·납품 대금을 못 받을까 전전긍긍하는 모습이 포착됐다. 일부 업체는 앞서 대기업 식품사의 납품 중단 소식을 듣고 덩달아 납품을 일시 중단했다가 재개하는 촌극을 벌이고 있다. 홈플러스는 현재 심플러스(Simplus)라는 통합 PB를 운영 중인데 식품·비식품 등 그 종류가 무려 1400여 개에 달한다. PB 협력사 중 대기업도 일부 있지만 대다수가 중소기업이라, 홈플러스의 재무 상황이 나아지지 않으면 업계 전반에 미치는 파장은 더 커질 수 있다.

더 큰 문제는 홈플러스를 10년 전 인수해 최대주주가 된 MBK파트너스(MBK)의 도덕적 해이다. 아시아 최대 사모펀드(PEF)라는 명성을 보유한 MBK는 ‘먹튀 경영’의 대명사이기도 하다. 그동안 막대한 차입금으로 유수의 기업을 사들인 뒤 알짜자산 매각 등을 통해 투자금 회수를 극대화하고 비싼 값에 재매각하기를 반복했다. 특히 이번 홈플러스의 경우 오프라인 유통 업황이 나빠지면서 경쟁력이 약화한 것인데, MBK가 어떠한 자구노력도 없이 기습적으로 법정관리를 신청한 것을 두고 금융채무를 탕감하려는 ‘꼼수 회생’이란 지적이 나온다. MBK가 ‘기업 정상화’라는 법정관리 본연의 취지보다는 손해를 최소화하고 투자금을 빠르게 회수하려는 ‘엑시트(Exit)’에만 혈안이 돼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는 이유다. 오죽하면 자본시장 일각에서는 “MBK의 본업이 먹튀이고, 그게 최대 경쟁력”이라는 비아냥까지 나올 정도다.

그런데 MBK의 ‘본업 경쟁력’은 아직 시작에 불과하다. 홈플러스 노동조합은 MBK가 법정관리를 기점으로 조만간 대규모 인력·비인력 구조조정을 단행할 것이며, 알짜 부동산 자산을 잇달아 매각해 홈플러스를 거덜 내고 결국엔 먹튀 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이런 비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MBK는 다시금 대어를 노리고 있다. 지난해 매출 4조 원을 돌파한 CJ제일제당 바이오 부문(CJ 바이오) 인수 절차에 돌입한 것. 사료용 아미노산·식품조미 소재 등 그린바이오 시장 세계 점유율 1위인 CJ 바이오는 안정적인 수익성과 글로벌 네트워크를 보유해 매력적인 매물이다. 앞서 중국 내 전략적투자자(SI) 등이 관심을 보였지만 협상이 원활치 않아 CJ제일제당은 매각을 잠시 중단했다가, 최근 MBK가 인수 가격을 제출하면서 매각 절차가 재개됐다. CJ 바이오의 매각가는 약 6조 원이 넘을 전망인데, MBK는 10조 원 규모로 결성 중인 블라인드펀드에서 재원을 마련할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에선 MBK가 CJ 바이오 인수를 성사시켜 자본시장에서 건재함을 입증하고 신뢰를 회복하려 한다는 해석이다. 하지만 MBK의 도덕적 해이를 잇달아 목격한 CJ 바이오 임직원들은 대체 무슨 죄인가. 이들은 세계 시장 점유율 1위를 일궜음에도 조만간 사모펀드에 팔려갈 모진 운명을 앞두고 있다.

앞서 MBK는 국가전략기술을 보유한 고려아연에 대한 적대적 인수합병(M&A)도 강행하고 있다. 기업가치 제고나 사회적 책임과 평판보다, 가치 있는 매물을 찾아 이익을 극대화하는 게 사모펀드의 본업이기에 그런 본업 경쟁력을 뭐라 할 순 없다. 하지만 인수 후 무능한 경영 탓에 한 기업의 경쟁력이 망가지면 그 책임은 과연 누가 질 것인가.

홈플러스 노조의 외침이 새삼 귀에 맴돈다. “김병주 MBK 회장은 사재라도 털어라.”

석유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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