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초로 MP3플레이어를 개발한 기업은 한국의 새한정보시스템이다. 한국은 이후 레인콤, 코원시스템, 삼성 등이 속속 시장에 제품을 출시하며 세계에서 MP3플레이어 종주국의 입지를 다졌다. 이들 기업의 선전으로 한국은 한 때 이 분야에서 세계시장 점유율이 40%가 넘었던 적이 있다.
하지만 2001년 애플이 '아이팟(iPOD)' 제품을 내놓으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한국 기업들이 제품 사양이나 디자인 경쟁에 몰두하는 동안 아이팟은 아이튠즈 뮤직스토어와 연계해 음악을 판매하는 새로운 시장을 개척한 것이다.
아이팟은 하드웨어 경쟁이 아닌 소프트웨어와 결합된 새로운 시장 창출로 미국에서 거의 독과점 위치까지 올라가는 대성공을 이뤘고, 시장에서 유료로 음악을 판매하게 해 준 혁신적인 기업이라는 호칭을 아울러 얻게 됐다.
단순히 하드웨어 측면에서만 보면 모방에서 시작한 제품은 모방으로, 혁신으로 시작한 제품은 혁신 제품으로 끝나야 한다. 하지만 소프트웨어 측면에서는 모방으로부터 출발했더라도 소비자와 교감하는 소프트웨어 여부에 따라 혁신 제품으로 시장에서 성공할 수 있다. 애플의 ‘아이팟’이 대표적이다.
현대경제연구원 장후석 연구원은 3일 ‘무너지는 하드웨어 불패 신화’ 보고서에서 애플의 성공사례를 통해 소프트웨어 시대에 성공하는 법칙을 제시했다.
◆ 소프트웨어로 무장한 '아이팟'
세계 최초의 MP3플레이어는 우리나라의‘엠피맨’이었고‘아이팟’은 한국 제품 이후 시장에 출시된 많은 MP3플레이어 중 하나의 제품에 불과했다. 하지만 시장에서 혁신 제품으로 성공한 것은 정작 애플의 아이팟이었다.
한국 MP3플레이어 기업들이 제품 사양과 디자인 경쟁에 몰두하는 동안 아이팟은 ‘아이튠스’를 바탕으로 새로운 시장을 개척했기 때문이다.
장 연구원은 “한국기업은 관성적으로 소비자가 민감하게 생각하는 하드웨어에 집중한 반면, 애플은 다른 기업들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하드웨어에 초첨을 맞추기 보단 소프트웨어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찾았다”고 진단했다.
불법 음악다운로드보다 합법적 다운로드에 요금을 지불할 수 있다는 소비자 인식 변화를 감지한 것으로 정형화된 소비자를 대상으로 여기지 않고 소비자와 교감했던 애플이 시장에서 성공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 소통의 공한을 마련한 ‘아이폰’
한국 휴대폰 기업들은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추고 있지만 이 때문에 오히려 국내에서 자사의 하드웨어 기술 장점을 소비자들에게 강요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소비자들은 이미 폐쇄적인 국내 휴대폰 시장에 한계를 느꼈고 스스로 참여하는 소비를 원하고 있었다.
아이폰 출시 이후 스마트폰에서 이런 현상은 더 분명해졌다. ‘아이폰’의 ‘앱스토어’는 소비자 간의 소통 공간만 마련된다면 소비자 스스로 소비를 진화시킬 수 있다는 성공 사례를 보여준다.
장 연구원은 “한국 기업들은 여전히 자사 하드웨어 강점을 통해 소비자를 선도하려 했지만 애플은 소비자 스스로 자신의 니즈를 발현시킬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을 뿐 아니라 소비자 만족을 오히려 극대화시켰다”고 지적했다.
◆ 소비자에 대한‘믿음’이 성공 요인
장 연구원은 애플의 성공신화는 소비자에 대한 ‘믿음’에서 시작해 소비자의 변화에 따라 제품을 변화, 발전시키는 것에서 비롯된 것으로 분석했다. 한국 기업들의 실패 원인 여기에서 찾고 있다.
장 연구원은 이에 따라 한국 기업들이 소비자에게 하지 말아야할 3가지로 ▲소비자를 규정지으려 하지 마라 ▲선도하려 하지 마라 ▲틀에 가두려 하지 마라 등을 제시했다. 한마디로 소비자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은 소비자 자신이라는 것이다.
장 연구원은 “한국 소비자들은 기업들이 마음대로 규정지을 수 있었던 어린이가 아니라 이미 스스로 판단하고 즐길 수 있는 성인으로 변하고 있다”며“소프트웨어시대 강자가 되기 위해서는 소비자에 대한 기업들의 인식 변화가 우선돼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