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직장인 김모(30)씨는 계절 중에 봄과 가을을 가장 싫어한다. 날씨가 따듯한 것은 좋다. 다만 이 날씨 속에서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지인들의 결혼식이 싫을 뿐이다.
이번 주 토요일엔 직장 상사가 결혼을 한다. 주말에 시간을 뺏기는 것도 억울한 데 대상이 직장 상사라니, 김씨는 머리가 지끈거린다. 솔직히 가기 싫다.
하지만 안 갈 수도 없다. 앞으로 계속 같은 부서에서 볼 사람이기 때문이다. 차라리 눈 한번 감고 갔다 오는 게 나중을 위해선 좋을 것 같다.
가기로 마음을 정하니 ‘축의금’이 마음에 걸린다. 평소 좋아하지 않던 상사에겐 축의금을 많이 쓰고 싶지 않다. 하지만 나중에 상사가 이를 기억이라도 한다면 자신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질 것 같다는 걱정도 든다. 소심해진 김씨는 5만원과 10만원 사이에서 고민을 한다. 김씨에겐 이것도 상당한 스트레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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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결혼하는 남녀의 나이는 20대 중후반에서 30대 초중반 정도다. 사회생활을 시작한 지 몇년 안된 직장인들의 나이와 일치한다.
학생일 때는 주변 지인들 역시 대부분 같은 학생들이라 결혼식 빈도가 비교적 낮다. 하지만 직장인이 되고나서는 그 빈도가 높아진다. 가깝게는 친한 친구에서부터 선배, 직장 상사까지 알고 지내는 사람들의 범위가 넓어지기 때문이다.
결혼식이 몰리는 봄엔 빈도가 더 높아진다. 한 주 걸러 결혼식이 이어진다.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 하지만 이것이 계속되면 슬슬 부담이 되기 시작한다. 지갑이 얇은 직장인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없는 돈을 축의금으로 써 댄다. 얇아지는 지갑과 함께 직장인들의 가슴도 휑해진다.
◇ 축하도 축하지만… 축의금에 ‘덜덜’
우리나라 직장인 10명 중 9명은 결혼식에 부담을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취업포털 인크루트의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직장인의 89.7%가 결혼식 참석에 부담을 느낀 경험이 있다고 응답했다. 특히 직장인 75.3%가 경제적 부담을 선택해 단연 1위를 차지했다. 인크루트에 따르면 설문에 참여한 직장인들의 평균 축의금 액수는 약 5만4000원이었다.
유치원교사 최모(30)씨는 최근 한 주에 한 번씩 찾아오는 지인들의 결혼식 때문에 우울하다. 매주 적어도 5만원 이상이 지출되다보니 경제적 부담이 만만치 않다.
최씨는 “봄 같은 경우엔 결혼식이 너무 잦아 고민이다”며 “주가 바뀔 때마다 지갑의 무게가 가벼워지는 걸 느낀다”고 말했다.
하지만 미혼인 최씨는 미래 자신의 결혼식을 위한 투자라고 생각하고 꾸준히 축의금을 내고 있다. 뿌린 만큼 거둔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그렇다면 축의금은 어떻게 산정될까. 취업포털 사람인 설문조사에 따르면 직장인의 절반 이상(55.6%)이 친밀도에 따라 축의금 액수를 정한다고 대답했다.
지난 23일에도 결혼식에 다녀왔다는 직장인 박모(28)씨는 “솔직히 별로 친하지 않은 사람 결혼식엔 3만~5만원 정도 내는 편이지만 친하면 10만원 이상은 내고 있다”고 답했다.
다음으론 △‘주변 사람들이 내는 액수에 따라서’(20.6%) △‘당시 경제적 여건에 따라서’(20.6%) △‘이전 당사자에게 받았던 액수에 따라서’(5.0%) 등이 뒤를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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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들은 축의금 이외에도 결혼식 대상자에 따라 부담을 느끼는 것으로 조사됐다.
인크루트 조사결과에 따르면 직장인들은 직장 상사 및 동료(37.4%)의 결혼식을 가장 부담스러워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많은 직장인들이 ‘직장’이라는 범주 안에 있는 사람들을 부담스럽게 여기고 있다는 한 예다.
지난 주말 직장 상사의 결혼식에 다녀왔다는 직장인 이모(30)씨는 “솔직히 딱히 친한 사이도 아닌데, 눈치가 보여 어쩔 수 없이 다녀오게 됐다”며 “축의금도 얼마나 해야 할지 난감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결국 이씨는 다른 직장 동료들에게 물어본 후 5만원을 냈다고 한다.
이씨는 “솔직히 직장상사 및 동료들은 ‘일적’으로 묶여 있는 사이이기 때문에 축의금 액수도 다른 사람들보다 더 신경이 쓰이는 게 사실”이라며 “결혼식에 가도 걱정, 안 가도 걱정인 게 회사사람들의 결혼식”이라고 밝혔다.
다음으로 직장인들은 거래처 관계자(31.3%)들의 결혼식이 부담스럽다고 응답했다. 역시 ‘일적’인 범주 안에 있는 부류다. 그 뒤를 이어 부담스러운 결혼식으로는 △학교 선후배 및 동기(16.5%) △먼 친척(11.5%) △기타(3.3%) 등이 있었다.
◇혼기 놓친 미혼 직장인들에겐 심리적인 ‘공허함’까지
결혼식은 직장인들에게 경제적(75.3%), 시간적(15.4%)인 부담을 안겨 준다. 이중에서도 경제적인 부담이 절대적이다.
하지만 소수 심리적(9.3%)인 부담을 느끼는 직장인들도 존재했다. 이들에게 결혼식은 경제적인 부담도 크지만 심적인 공허함과 압박감을 주는 행사 중 하나다. 여러 부담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더 큰 타격을 주게 된다.
이 부류에 속한 직장인들은 대부분 혼기를 놓친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소위 말하는 ‘노총각’, ‘노처녀’ 직장인들이다.
모 IT업체에서 근무 중인 서모 과장은 올해로 37살이다. 서 과장은 대부분의 결혼식을 일 핑계로 가지 않고, 축의금만 보낸다. 그렇게 축의금만 보낸 결혼식이 지난해에만 6번이나 있었다. 서 과장은 결혼식이 있을 때마다 자신에게 몰려드는 관심이 부담스럽다.
서 과장은 “결혼식 때마다 동료들이나 상사들의 ‘언제 장가갈꺼냐’는 질문 때문에 곤혹스럽다”며 “이런 얘기도 한두 번이지 매번 듣다보니 솔직히 짜증이 난다”고 말했다.
홍보대행사에서 일하는 임모(40) 부장 역시 마찬가지다.
임 부장은 “특히 가족 및 친척 결혼식이 가장 겁이 난다”며 “특히 내가 여자라 친척들이 ‘시집 언제 가느냐’며 더욱 성화다. 압박감이 장난이 아니다”고 밝혔다.
이어 “결혼식 때마다 ‘결혼’에 대한 압박감과 공허함 때문에 하루 종일 우울해진다”며 씁쓸함을 토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