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 태블릿PC 패션 운동화 등 평소 원했던 것들을 거침없이 사냥하고 있는 그들. 영화 ‘주유소 습격사건’을 방불케 하는 그들의 비행은 지탄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그들의 비행을 비난할 수만은 없다. 오랜 실업으로 주머니는 비어있는데 갖고 싶은 것은 많고, 캄캄한 앞날에 세상에 대한 불만은 쌓여가고. 이같은 그들의 절망과 좌절이 비뚫어진 욕구로 분출됐기 때문이다.
이같은 사태는 비단 영국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앞서 튀니지에서 시작된 중동의 재스민 혁명도 발단은 청년 실업이었다. 튀니지의 열악한 경제 사정은 가뜩이나 빈곤으로 절망에 빠진 청년들을 성나게 만들었다. 이것이 중동 전역을 핏빛으로 물들인 단초였다.
중국에서 최근 빈발하고 있는 시위도 배경에는 빈부격차 확대 등 양극화에 대한 서민들의 분노가 있었다.
청년 실업인구 31만명 시대인 우리나라도 이같은 사태가 일어나지 말란 법은 없다. 취업준비생이 60만명에 육박하고, 취업이 됐다해도 임시직이나 비정규직이 허다해 입에 풀칠만 겨우 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영국 청년들처럼 과격한 폭력 시위를 다짐할만큼의 여력이 없다는 것이 다행일 뿐이다.
하지만 소잃고 외양간 고치는 우를 범해선 안된다는 생각이다. 정부의 긴축정책과 실업률 상승에 대한 청년들의 불만, 인종 간의 갈등, 빈부 격차에 대한 분노 등 뇌관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
정부는 제2의 호스니 무바라크 신세가 되지 않으려면 이들을 감싸안을 만한 희망의 불씨를 심어 줘야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