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기관에서 향정마약류 남용사고가 빈번하게 발생하자 보건 당국의 관리와 의료기관 내부 감독을 강화해야 한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이 같은 논란은 지난 1일 강남의 유명 산부인과 의사 김모(45·남)씨가 평소 수면장애와 우울증을 앓던 이모(30·여)씨에게 미다졸람을 투여한 뒤 이씨가 사망하자 시신을 유기하면서 촉발됐다.
3일 보건 당국 및 의료 전문가들에 따르면 현행법상 의료용 마약류를 수입하는 사람, 제조업자의 허가·관리는 식약청에서, 병원, 약국, 도매상의 허가·관리는 시·도 보건소에서 담당하는 것으로 이원화 돼 있어 체계적이고 신속한 관리와 단속이 불가능한 실정이다.
향정마약류을 치료 목적으로 사용 중인 치과 등 병의원은 모두 2000여 곳이나 된다. 하지만 지자체 보건소에서 마약류 점검 시 인원과 예산 부족을 이유로 10%인 200여곳만 조사를 벌인다. 보건소 확인 결과 조사는 1년에 단 2번 진행되며 한 번 조사할 때마다 2명의 조사원이 하루 4곳을 점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조사원들은 향정마약류 사용 뒤 보관 상태와 사용 내용 기록 여부 및 재고량만 조사할 뿐 환자에게 어떻게 사용했는지는 확인할 수 없어 반쪽 점검에 불과하다는 지적의 목소리가 높다.
한 서울시 보건소 관계자는 “조사할 때 (약사법에 의거한)마약류만 점검하는 것이 아니라 의료법 관련 내용을 점검하기 때문에 인력도 부족하고 모든 것을 적발하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의료업계 관계자들은 이렇게 관리 사각지대를 틈 타 의료용 목적을 빙자해 ‘피로회복제’ 등의 명목으로 향정마약류가 남용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 사망한 이모 씨의 경우도 피곤할 때마다 병원을 찾아 향정신성의약품인 미다졸람을 맞아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익명을 요구한 한 의료관계자는 “영양제에 비급여인 의약품을 함께 처방하면 돈을 더 받을 수 있기 때문에 미다졸람 등의 향정의약품을 함께 투여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대한약사회 최헌수 부국장은 “실제 향정마약류 오남용 적발이 미비한 점도 있지만 더 큰 문제는 병원 등 의료기관의 부실한 운영 시스템”이라며 “처방과 의료행위(주사)가 동시에 이뤄지는 병원의 특성상 이를 감시할 내부관리 시스템이 있어야 향정마약류의 오남용을 막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향정의약품이 어떤 목적으로 사용했는지 내부 관리 시스템이 아니면 사실상 확인할 법적 근거가 없고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한계가 있음에도 보건당국은 관리 제도를 더 강화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식약청 마약류관리과 관계자는 “의사가 어떻게 향정마약류를 사용하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는 처방전 등 진료 기록을 달라고 해야 하는데 강제할 방법이 없다”며 “향정마약류를 주사하는 현장을 잡거나 향정마약류를 사용한 환자의 내부 고발이 아닌 이상 실제 마약 남용 사실 적발은 불가능하다”고 해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