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이 멈췄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 한 치 앞도 내다 볼 수 없다. 통신, 교통, 유통·공급 등 기반시설이 마비돼 세상은 대 혼돈에 빠진다.’
때 이른 ‘블랙아웃’(대규모 정전사태) 경고가 나오고 있다. 원인은 뭘까. 국내 전력 공급의 젖줄인 원자력 발전에 이상이 생기면서 전력예비율이 급격히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한국수력원자력에 따르면 현재 23기의 원전 중 불량 부품을 사용한 신고리 1·2호기, 신월성 1호기를 합쳐 총 10기(계획예방정비 포함)의 가동이 중단된 상태다.
예년보다 일찍 찾아온 무더위도 전력수급을 악화시킨 주요 원인으로 지목된다. 5월 중순부터 전국의 낮 최고 기온이 평균 30℃를 웃돌면서 냉방 부하가 수직 상승했다.
전력 당국은 예비전력이 350만kW 이하로 떨어진 지난 5일, 올 여름 첫 전력 경보 ‘관심’ 단계를 발령하기도 했다.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자 정부는 전기 사용 비중이 가장 높은 산업계에 절전 동참을 호소하는 등 전력 수요관리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 전자·자동차·철강·석유화학 등 대표적인 에너지 다소비업종의 최고경영자(CEO)들은 최근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 장관과의 ‘여름철 전력수급대책 간담회’에서 “특단의 대책을 강구해 실행하겠다”며 화답하기도 했다.
기업들은 마른 수건도 짜내겠다는 각오로 고강도 전력 절감 활동에 나선 상황이다. ‘(넥타이를) 풀고’, ‘(조명을) 끄고’, ‘(공장 가동을) 줄이고’ 등 다양한 에너지 절감 대책을 마련해 실행에 옮기고 있다. 특히 지난 수년간 전력난이 경영의 또 다른 ‘위협 요소’라는 공감대가 꾸준히 형성되면서, 상시적인 에너지 절약 활동으로 아예 체질을 바꾸려는 기업들도 늘고 있다.
삼성, 현대차, SK, LG, 포스코 등 국내 주요 기업들은 에너지 비용이 제품 생산원가와 직결되는 만큼, 허리띠를 더욱 바짝 졸라매고 있다. 노타이, 셔츠 차림으로 간편한 복장으로 근무하는 ‘쿨비즈’(Coolbiz) 운동을 전사적으로 진행하고, 정부의 권장 냉방온도 준수, 전력 피크 시간대(오전 9~10시, 오후 2시~5시)엔 전기 사용을 최소화하고 있다.
산업 현장에서도 전력 절감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 생산 공장 정기보수 일정을 전력 수요가 가장 높은 7~8월로 연기하고, 자가 발전기를 최대한 가동하고 있다. 또 실내 온도를 낮추기 위해 뙤약볕이 내리 쬐는 공장 옥상에 자주 물을 뿌리는가 하면, 빛이 잘 드는 공간의 경우 최소한의 조명만 키고 있다.
전력수급 불안을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연구개발(R&D)에 몰두하고 있는 기업들도 눈에 띈다. 특히 이들 기업이 집중하고 있는 에너지저장시스템(ESS) 기술은 가장 현실적인 전력 대책으로 주목받고 있다. 현재 ‘생산→사용’의 2단계 전력시장 구조를 ‘생산→저장→사용’ 등 3단계로 바꿔 전력난을 해결할 수 있다는 것.
업계 한 관계자는 “전력 부족 문제를 합리적으로 풀 수 있는 방법은 분산형 전원인 신재생에너지와 필요할 때 전기를 빼 쓸 수 있는 ESS의 보급 활성화”라며 “이를 통해 스마트그리드(지능형 전력망) 구축을 서둘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력 위기’는 당장 기업들 앞에 닥친 현실이다. 일부 기업들은 수출 물량을 맞추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공장을 정상 가동하고, 절전 목표 위반 과태료를 납부하는 고육책을 선택하기도 한다. 에너지 절약을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는 그들만의 전장 속으로 들어가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