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병화 칼럼] 브렉시트안 부결 이후, EU는 지속가능한가

입력 2019-01-21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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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대 경제학부 교수

지난주 영국과 유럽연합(EU)의 브렉시트(Brexit) 합의안이 영국 하원에서 부결되었다. 우여곡절 끝에 도출된 합의문에도 불구하고 영국 의정 사상 최대의 표차로 정부가 패배하였다. 유혈투쟁을 벌여 온 아일랜드와 영국령인 북아일랜드의 국경문제가 다시 수면 위로 올라온 것이 주요 원인이다.

구체적으로, 합의안에는 2020년까지 새 무역협정을 맺지 못하면 영국과 북아일랜드가 EU 관세동맹에 당분간 속하기로 하는 백스톱(backstop) 조항이 포함되어 있다. 하지만 이 조항을 두고 여당인 보수당에서는 진정한 EU 탈퇴가 아니라고 주장하였고, 연립정부를 구성했던 민주연합당(DUP)에서는 북아일랜드가 이 조항으로 인해 본토와 떨어져 나갈 수 있다고 보았다. 결국 모두가 반대하는 합의안이 된 것이다.

브렉시트는 2016년 6월 23일 찬반 국민투표로 결정되었다. 영국의 테리사 메이 총리는 2017년 3월 29일 공식적으로 EU 탈퇴를 통보하였고 EU와 협상을 시작하였다. EU의 헌법이라 할 수 있는 리스본조약 50조에 의해 2년 후가 되는 2019년 3월 29일에는 탈퇴해야 한다. 그 시한이 이제 두 달가량 남은 상황에서 이번 영국 의회의 합의안 부결은 아무런 협상 없이 EU를 탈퇴하는 ‘노 딜(No Deal) 브렉시트’ 가능성을 높이고 있는 상황이다. 실제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전 세계 주요 국가들은 벌써부터 엄청난 불확실성을 가져올 노 딜 브렉시트 상황에 대비하고 있다.

2016년 브렉시트가 결정된 원인으로는 유럽 재정위기로 인한 영국의 EU 분담금 증가와 이민자 문제가 결정적이었다. 2010년 남유럽 국가들인 PIIGS(포트투갈, 아일랜드, 이탈리아, 그리스, 스페인) 국가들의 재정위기로 시작된 유럽 재정위기로 유럽중앙은행(ECB)은 양적완화 정책을 시행하였다. 장기 대출 프로그램(LTRO)과 자산 매입 프로그램(QE)을 비롯하여 위기국의 국채와 회사채를 지속적으로 매입하면서 EU 주요 회원국의 분담금이 증가하였다. 이 중 영국의 분담금은 EU 국가들 중 세 번째로 많은 수준으로 연간 15조 원에 달하였다. 그리고 EU 수장국 역할을 하는 독일이 적극적으로 이민자 수용 정책을 실행하면서 이를 따랐던 영국 국민들의 부담이 더욱 커진 것이다.

사실 EU에 속한 유럽 국가들의 탈퇴 가능성은 비단 영국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유럽 재정위기 속에서 구제금융을 받은 그리스의 EU 탈퇴를 의미하는 그렉시트(Grexit) 이슈는 벌써 8년이 넘었다. 작년 8월에 구제금융 체제를 벗어나긴 했지만 그 사이 경제 규모는 25% 축소되었고 실업률은 아직도 20%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국가부채는 2017년 말 기준 세계 최고 수준인 국내총생산(GDP)의 178.6%를 기록하는 등 그리스의 위기는 지속되고 있다.

여기에 유로존 3위 경제대국인 이탈리아에서는 작년 3월 선거에서 EU 탈퇴를 주장하는 정당이 집권하게 되었다. 재정 적자 규모를 GDP의 3% 내로 제한하는 EU 규정으로 갈등이 고조되었는데 다행히도 내년 예산은 타협이 된 상황이다. 하지만 국가부채 비율이 130%가 넘는 이탈리아의 EU 탈퇴 가능성은 언제든지 열려 있다.

최근에는 독일에서도 EU 탈퇴 가능성이 처음으로 제기되었다. 지난 선거에서 큰 폭의 지지율 상승을 보였던 극우정당 ‘독일을 위한 대안(AfD)’은 최근 전당대회에서 EU가 개혁하지 않는다면 독일이 EU를 탈퇴하겠다는 선거공약을 내걸었다. 앙겔라 메리켈 총리가 지난 선거 결과에 책임지고 당대표 출마 포기는 물론, 2021년 정계 은퇴를 선언한 가운데 AfD의 지지율 상승은 분명 EU 탈퇴를 가능하게 하는 요인이다.

이렇듯 유럽 재정위기로 시작된 EU 탈퇴 움직임의 원인이 EU 회원국 간의 분담금, 이민자 수용, 자국 정치 상황 등 다양하게 확대되고 있다. 지금까지는 잘 봉합해 왔지만 앞으로 한 국가의 EU 탈퇴는 다른 국가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사실 영국 의회의 이번 합의문 부결이 노 딜 브렉시트로 갈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인다. 메이 총리가 마련한 ‘플랜 B’가 기한 안에 의회를 통과하거나 EU 회원국의 만장일치로 탈퇴 기한을 연장하여 그 사이 새로운 합의안 도출 또는 2차 국민투표를 시행할 수도 있다. 어찌됐건 현재로는 영국이 첫 EU 탈퇴국이 될 가능성이 높다. EU 체제가 어떻게 지속될지 지켜볼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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