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는 충전해 놓은 돈이 부족해도 한 달에 30만 원 한도로 신용카드처럼 후불결제도 할 수 있게 된단다. 은행 통장이나 신용카드가 없어도 금융거래를 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정부가 14년 만에 전자금융거래법을 완전히 뜯어고치기로 했다. 그동안 스마트폰이 대중화되기 전인 2006년에 만들어진 법이 시대에 뒤떨어진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금융위원회는 최근 ‘디지털금융 종합혁신방안’을 발표했다. 새로운 형태의 금융 사업자인 ‘종합지급결제업사업자’를 허용하기로 한 것이다. 결제사업자가 되면 앱에서 예금과 대출 업무를 제외한 급여이체, 송금·카드대금·보험료·공과금 납입, 금융상품 중개 및 판매 등 계좌 기반 서비스를 할 수 있다. 전통 금융업과 빅테크·핀테크 기업 간 무한자율 경쟁 시대가 열리는 것이다.
‘00페이’에 대한 후불결제 한도액은 30만 원으로 결정했다. 현재 페이는 사용자가 미리 충전한 금액만큼 결제가 가능하지만 앞으로 30만 원까지는 ‘외상 결제’가 가능해진다. 액수 한도가 있긴 하지만 사실상 신용카드식 사업이 허용되는 셈이다.
관련업계에서는 금융업의 디지털 전환이 피할 수 없는 흐름이라는 것에는 동의하지만 네이버, 카카오 등 거대 온라인 플랫폼 ‘빅테크’가 금융권 생태계를 교란하는 포식자 역할을 하는 것 아니냐고 우려한다. 네이버페이 가입자는 300만 명, 월 결제자수는 1250만 명에 달한다. 올해 상반기 결제액은 역대 최고 금액인 12조5000억 원을 기록했다. 카카오페이 가입자는 3300만 명에 달하고 연간 거래액도 올해 60조 원을 기록할 것으로 업계는 전망하고 있다.
카드사들은 빅테크들이 후불결제를 통해 신용카드 사업을 하지만 여신업법 테두리에 들어오지 않는 점을 지적한다. 건전성 관리, 마케팅 규제 등을 회피할 수 있다는 것이다. 보험업에서는 금융업 직접 진출이 아닌 제휴 형식으로 각종 금융 규제를 피할 수 있다고 불만이 크다.
이 같은 불만과 우려에 금융위는 ‘동일 기능·동일 규제’를 구현하기 위해 관련 협의체를 만들기로 했다. 빅테크 업체에 유리한 규제가 없는지 따져보겠다는 것이다. 금융위는 기존 금융권과 빅테크, 핀테크 업체들이 모두 참여하는 ‘디지털금융 협의회’를 통해 규제 등과 관련된 세부 내용을 조율하기로 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핀테크 기업이 제공하는 혁신 서비스가 금융회사와 동일하다고 보기 어려운 사례가 있어 정부의 고민도 깊을 것 같다.
정부와 업계가 의견을 좁혀나가 윈윈을 할 수 있는 구체적이고 합리적인 제도적 발판을 마련해야 한다. 금융시스템 리스크를 최소화하지 않으면 또다른 위기가 찾아올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