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범모 국립현대미술관장은 7일 서울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국립현대미술관은 이번 기증을 통해 미술소장품 1만 점의 시대를 열었다"며 "한국 문화예술계 발전을 위해 평생을 수집한 미술품을 기증해주신 고 이건희 회장의 유족분들께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고(故)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유족이 국립현대미술관에 작가 246명의 작품 1488점(1226건)을 기증했다. 한국작가의 작품은 238명, 1369점이며 외국작가의 작품은 8명, 119점이다.
그동안 국립현대미술관이 소장한 작품 중 1950년대 이전까지 제작된 작품은 960여 점에 불과했다. '이건희 컬렉션'은 회화가 대다수이며 조각, 공예, 드로잉, 판화 등 근현대미술사를 총망라한다. 특히 근대작가 범주에 들어가는 작가 작품이 58%를 차지한다. 국립현대미술관은 이번 기증이 근대미술 컬렉션의 질과 양을 비약적으로 도약시켰다고 설명했다.
윤 관장은 "제 생애 이런 컬렉션은 두 번 다시 보기 어려운 복잡성을 갖고 있다"며 "희소가치가 높고 수집조차 어려웠던 근대기 소장품이 이번 기증으로 크게 보완돼 한국 근대미술사 연구에 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했다.
'이건희 컬렉션' 중 특히 주목할 점들은 김은호, 이상범, 변관식, 김기창, 박래현 등 한국화가의 대표작이 대거 기증됐다는 것이다. 이상범이 25세에 그린 청록산수화 '무릉도원도(1922)', 노수현의 대표작으로 유명한 '계산정취(1957)', 김은호의 초기 채색화 정수를 보여주는 '간성(看星)(1927)', 김기창의 5m 대작 '군마도(1955)' 등이 이에 해당한다.
소장품 구입 예산이 적은 국립현대미술관이 구하기 어려웠던 박수근, 장욱진, 권진규, 유영국 등 근대기 대표 작가들의 작품도 골고루 망라돼 있다.
윤 관장은 "국립현대미술관에 김환기 시리즈가 없었던 건 국립현대미술관 1년 작품 구입예산을 2~3년을 모아야 김환기 대표작 하나를 살 수 있었기 떄문"이라며 "꿈도 꿀 수 없었는데, 이중섭이나 박수근 작품 등 1500점에 이르는 작품이 기증됐다"고 했다.
근대미술 희귀작도 여러 점 기증됐다. 나혜석 작품 진위평가의 기준이 되는 '화녕전작약'(1930년대), 이중섭의 스승이기도 했던 여성 화가 백남순의 유일한 1930년대 작품 '낙원'(1937), 총 4점만 전해지는 김종태의 유화 중 1점인 '사내아이'(1929) 등이다.
처음 국립현대미술관 소장품이 된 해외 거장 작품으로는 모네, 고갱, 피카소, 호안 미로, 살바도르 달리, 마르크 샤갈 등의 작품이 있다.
국립현대미술관은 오는 8월 서울관에서 열리는 '이건희 컬렉션 1부: 근대명품(가제)'을 통해 한국 근현대 작품 40여점을 공개한다. 이어 오는 12월 '이건희 컬렉션 2부: 해외거장(가제)'을 통해 모네, 르누아르, 피카소 등의 작품 전시를 연다. 2022년 3월엔 '이건희 컬렉션 3부: 이중섭 특별전'을 통해 이중섭의 회화, 드로잉, 엽서화 104점을 선보인다.
덕수궁관은 오는 7월 개최되는 '한국미, 어제와 오늘' 전(展)에 일부 작품을 선보이고 올해 11월 '박수근' 회고전에 이건희 컬렉션을 대거 선보이게 된다. 2022년 9월 미국 로스앤젤레스 카운티뮤지엄(LACMA)에서 열리는 한국 근대미술전에도 이건희 컬렉션 중 일부를 선보인다.
과천관에서는 이건희컬렉션과 국립현대미술관 소장품 및 아카이브의 새로운 만남을 주제로 한 '새로운 만남'을 2022년 4월과 9월에 순차 개막한다. 청주관에서는 수장과 전시를 융합한 '보이는 수장고'를 통해 이건희컬렉션의 대표작들을 심층 감상할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지역 미술관과 연계한 특별 순회전도 계획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