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소권을 독점하고 있는 검찰. 검찰의 진정한 권력은 ‘불기소’(무혐의‧범죄불성립‧공소권없음‧기소유예) 하는데서 나온다는 말이 있다. 재판에 가지 않고 내리는 일종의 면죄부를 가졌으니, 틀린 말도 아니다.
검사의 불기소 권한은 억울한 피해자가 생기지 않게 하는 순기능이 있다. 다만 검사의 막강한 권력과 부적절한 자본이 만났을 때 문제가 생긴다.
검찰의 불기소 처분은 일사부재리의 효력(판결이 확정된 사건에 대해 다시 재판하지 않는 것)이 인정되지는 않지만 결정적인 증거가 다시 나오지 않는 한 재수사는 어렵다. 만에 하나 새로 증거가 나왔더라도 이에 대한 효력을 일차적으로 판단하는 곳도 검찰이다.
올해 1월 검경 수사권 조정으로 직접수사가 6대 범죄로 축소됐지만 기소독점주의가 자리 잡고 있는 한 검찰은 ‘무소불위’다.
이러한 검찰이 여권과 야권의 유력 대선 후보인 이재명 경기도지사와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운명을 양손에 나눠 쥐었다. 바야흐로 검찰의 시간이다.
윤 전 총장은 자신은 물론 배우자, 측근 등이 연루된 사건으로 검찰의 수사망에 올랐다.
‘고발 사주’ 의혹은 윤 전 총장의 아킬레스건이다. 지난해 4월 총선을 앞두고 검찰이 검언유착 의혹과 윤 전 총장 가족 관련 비리 의혹에 대응하기 위해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 최강욱 열린민주당 대표 등 범여권 인사를 고발하도록 국민의힘에 사주했다는 의혹이다.
고발 사주 의혹의 핵심은 ‘손준성→김웅→조성은’으로 이어지는 연결고리다. 고발 사주 의혹 사건 당시 손 검사와 김 의원, 조 씨는 각각 대검찰청 수사정보정책관, 야당 후보자,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 선거대책위원회 부위원장이었다.
서울중앙지검은 대검찰청으로부터 고발 사주 의혹 고소 사건을 배당받은 뒤 공공수사1부에 배당했다. 특수사건 전담인 4차장 산하 부서 검사들까지 파견해 수사팀을 꾸렸다.
수사팀은 검찰총장의 참모부서이자 범죄 정보 수집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수사정보정책관실의 책임자가 움직인 정황이 짙은 만큼 윤 전 총장의 인지 가능성에 무게를 둔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1년 넘게 끌어온 윤 전 총장의 부인 김건희 씨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연루 의혹에 대해서도 조만간 결론을 낼 것으로 보인다.
검찰의 수사 결과에 따라 윤 전 총장은 정치 생명에 위기를 맞을 수 있다.
서울중앙지검은 이재명 지사의 이른바 ‘대장동 개발 특혜’ 의혹과 관련한 수사에 착수했다. 이 지사가 2014년 성남시장 시절 대장동 개발 사업에 특혜를 제공한 의혹에 대한 본류는 경찰이 수사 중이다. 경찰은 대장동 개발 사업에서 막대한 이익을 챙긴 화천대유자산관리 대주주 김모 씨 등에 대한 횡령·배임 혐의를 파악하는데 주력하고 있다.
서울중앙지검 공공수사2부는 이 지사 측 캠프가 대장동 특혜 의혹과 관련해 허위사실 유포 혐의로 김기현 국민의힘 원내대표,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 등 3명을 고발한 사건을 들여다보고 있다.
그러나 김 대표 등의 주장이 허위사실에 해당하는지 파악하기 위해서는 의혹 사건 전반을 살펴볼 수밖에 없는 만큼 이번 수사는 중량감이 있다.
내년 3월 9일 대선을 앞둔 상황에서 검찰의 여야 유력 대선 후보자들에 대한 동시 수사라는 초유의 사태를 맞은 지금, 중요해진 것은 정치적 중립이다.
이들 사건에 대해 어떤 결론이 나든 검찰은 논란을 피해가지 못한다. 그렇다면 과정이 엄격해야 한다.
엄정하고 신속한 수사는 물론 국민들에게 알릴 것은 적극적으로 공개해야 한다. 검찰이 정치를 하면 피해는 오롯이 국민들이 감당해야만 하는 학습효과는 이미 충분하다. 시간을 끌수록, 장막을 칠수록 국민들은 정치 검찰의 망령을 떠올릴 수밖에 없다.
공조도 중요하다. 고발 사주 의혹 수사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와 많은 부분이 겹친다. 수사가 정점을 향할수록 충돌 가능성은 크다. 대장동 의혹에 이 지사의 이름이 계속 거론되는 만큼 공수처가 수사에 나설 개연성도 있다.
검찰이 사건 이첩 등을 두고 공수처와 사사건건 부딪쳐 왔지만, 이번엔 ‘밥그릇 싸움’으로 비쳐서는 안 된다.
각종 의혹이 꼬리를 물고, 온갖 궤변들이 난무해 국민이 분열되는 엄중한 상황이다. 정치 검찰이 아닌 국민의 검찰로서 제 역할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