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 갈등이 장기화하는 상황에 ‘유일한’ 법정 의사단체인 대한의사협회(의협)가 자멸하는 모습이다. 공식적으로 ‘의사 블랙리스트’ 작성·유포자를 ‘피해자’로 두둔하고, 일부 임원은 간호사들에 대한 막말로 시민단체로부터 고발당했다.
24일 보건복지부와 경찰청, 의료계 등에 따르면, 경찰은 ‘의사 블랙리스트’ 작성·유포와 관련해 45명을 조사하고 이 중 32명을 검찰에 송치했다. 이 중 1명은 구속됐다. 검찰에 송치된 32명 중 30명은 의사, 2명은 의과대학생이다. ‘의사 블랙리스트’는 아카이브 형식의 해외 사이트에 공개된 의사 명단이다. 해당 사이트에는 수련병원 남은 전공의와 응급실 근무 전임의·군의관 등의 이름과 휴대전화 번호, 출신 학교, 대학·학창시절 교우관계와 평판, 현재 가족관계와 대인관계, 소문 등 개인정보가 상세히 기재됐다. 현재는 응급실 명단만 삭제된 상태다.
‘의사 블랙리스트’ 관련 수사·기소에 의협은 격하게 반발하고 있다. 임현택 의협 회장은 21일 서울 성북경찰서에서 구속된 사직 전공의 정모 씨를 면회한 뒤 “구속된 전공의와 리스트에 올라 피해를 입은 전공의들 모두 정부가 만든 피해자”라고 주장했다. 시·도의사회들도 성명을 내 블랙리스트 작성 유포를 “저항 수단(서울시의사회)”, “개인적인 의견 표출(전라북도의사회)”라고 두둔했다. 경기도의사회는 정 씨 구속을 “북한 수준의 인권 유린”이라고 주장했다.
여기에 의사만 가입 가능한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전 씨의 개인 계좌번호를 공유하고 후원하는 촌극이 벌어지고 있다. 블랙리스트 작성·유포는 현장에 남은 전공의들에게 집단행동을 폭력적으로 강요하는 범죄행위임에도 의사집단 내에선 구속된 전 씨가 ‘용자’로 추앙받고 있다.
전국 의과대학 교수협의회(전의교협), 전국 의과대학 교수 비상대책위원회(전의비) 등에선 공식 입장이 없는 것과 대조적이다. 오히려 교수집단 내에선 자성의 목소리도 나온다. 강희경 서울대 의대·병원 교수협의회 비대위원장은 15일 페이스북에 “블랙리스트를 만들고 배포하는 분들은 스스로 얼마나 부끄러운 일을 하고 있는지 깊이 생각해 보시기 바란다”고 지적했다.
최근 제정·공포된 ‘간호법’과 관련해선 박용언 의협 부회장의 막말이 논란이 되고 있다. 그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대한간호협회(간협) 보도자료를 게시하며 “그만 나대세요. 그럴 거면 의대를 가셨어야죠”라고 적었다. 또 “장기 말 주제에 플레이어인 줄 착각 오지시네요. 주어 목적어 생략합니다. 건방진 것들”이라고 비하했다. 글이 논란이 된 뒤에는 “간호사들 입장에선 내 글이 매우 기분 나쁠 것”이라면서도 “전공의들은 더 기분 나쁠 것”이라고 비꼬았다. 이에 한 시민단체는 박 부회장을 명예훼손과 모욕 혐의로 경찰에 고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