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장 대형건설사 투톱으로 꼽히는 현대엔지니어링과 SK에코플랜트가 연이어 ‘재무통’을 신임 대표로 내세우며 IPO(기업공개)에 대한 기대감을 키우고 있다. 두 회사 모두 사업 분야를 넓히는 동시에 유동성을 높이는 데에 주력하고 있으나, 건설업 부진이 해결되기 전까진 상장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26일 건설업계에 따르면 현대차그룹은 이달 현대엔지니어링 신임 대표이사로 주우정 부사장을 내정했다. 현대제철에서 재무관리실장과 원가관리실장 등을 역임하고 기아차 재경본부장을 지냈다. 기아 창사 이래 최고 실적 달성에 기여한 핵심 인물로 꼽힐 만큼 그룹 내에선 대표적 재무 전문가로 알려져 있다.
이번 인사는 실적 부진 타개와 조직 전반의 체질 개선을 위한 전략으로 보인다. 건설 업황 악화로 낮아진 재무 성과를 개선, 기업가치를 높여 미뤄왔던 IPO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하는 것이 최종 시나리오라는 분석이 나온다.
현대엔지니어링은 올 3분기 만족스럽지 못한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연결 기준 매출은 3조7883억 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9.8% 증가했으나 영업이익은 21.3% 감소한 522억 원을 기록했다. 353억 원의 순이익이 발생한 지난해 3분기와 달리 185억 원의 순손실을 내며 적자 전환했다.
주택 시장 한파로 해외 사업 비중을 52.7%까지 늘렸으나 이 또한 녹록지 않다. 지난달 31일 기준 현대엔지니어링이 올해 체결한 해외사업 총 계약액은 42억2227만 달러로 전년 동기(63억7917만 달러)보다 절반 이상 줄었다.
같은 기간 매출원가율 또한 0.4%포인트(p) 오른 95.9%를 기록하면서 0.4%포인트(p) 늘었다. 자재비(8215억 원)와 외주비(2조3512억 원)가 총 매출원가(3조7360억 원)의 대부분을 차지했다.
앞서 현대엔지니어링은 2021년 말 IPO를 추진했으나 기관투자자 수요예측에 실패하며 이듬해 초 철회한 바 있다. 2022년 IPO 기업의 수요예측 평균 경쟁률은 836대 1이었으나 현대엔지니어링의 경쟁률은 50대 1보다 낮아 공모를 진행하기 힘든 정도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사회적 이슈가 된 건설현장 사고로 건설주에 대한 수요기관의 우려가 컸다. 과도하게 큰 구주 매출 또한 투자 매력도를 끌어내린 것으로 분석됐다. 구주 매출은 IPO 과정에서 기존 주주가 이미 보유하고 있는 주식지분 중 일부를 일반인들에게 공개적으로 파는 것으로, 비율이 높을수록 회사가 아닌 기존 주주의 주머니로 들어가는 공모 자금이 늘어난다.
현대엔지니어링이 구성한 구주와 신주 매출은 각각 75%(1200만 주)와 25%(400만 주)였다. 이 중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은 534만 주, 정몽구 명예회장은 142만 주를 내놨다. 주당 공모 희망 최저가(5만7900원)을 적용한다고 가정하면 두 사람 몫으로 돌아가는 자금은 4000억 원 이상으로 추산됐다.
현대엔지니어링 측은 신임 대표이사 선임과 IPO 사이에 관계가 없다는 입장이다. 현대엔지니어링 관계자는 “현재로써는 IPO를 둘러싼 어떠한 계획도 없다”고 말을 아꼈다.
업계에선 정 회장이 향후 지배구조 개편 과정에 IPO를 통해 확보한 자금을 활용할 가능성이 크기에 시간을 두고서라도 IPO는 진행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온다. 정 회장이 지분을 가진 9곳의 계열사 가운데 현대글로비스(20%) 다음으로 지분율(11.7%)이 높은 곳이 현대엔지니어링이어서다.
대형건설사 중 상장에 공을 들이는 또 다른 회사로는 SK에코플랜트가 꼽힌다. 올 7월 김형근 전 SK E&S 재무부문장(CFO)을 새로운 대표이사로 선임하며 재무 건전성 회복과 IPO를 최우선 목표로 삼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김 대표는 2016년 SK주식회사 재무1실장을 역임했고 2020년에는 SK에어가스 대표, 2021년 SK주식회사 포트폴리오매니지먼트 부문장을 거친 인사다. SK E&S CFO로 재직할 당시 안정적 재무기반을 마련한 것이 이번 인사에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SK에코플랜트는 2021년 사명 변경과 함께 건설에서 환경과 에너지 분야로의 사업 확장을 공식화했다. 이후 수처리와 폐기물 처리 전문기업 등을 인수했고, 지난달에는 조직개편을 통해 반도체 종합 서비스를 제공하는 하이테크사업 조직을 신설했다.
이 과정에서 아직 자리 잡지 못한 자회사 실적이 SK에코플랜트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3분기 연결 기준 매출은 2조1047억 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8.6% 줄었고 영업손실은 110억 원을 기록하며 적자 전환했다.
자회사 편입으로 차입금이 크게 늘며 부채비율 또한 높아졌다. 지난해 3분기 10조1197억 원이던 부채총계는 올 3분기 11조1126억 원으로 9.8% 뛰었다. 같은 기간 부채비율은 210%에서 251%로 상향했다.
SK에코플랜트는 2022년 프리IPO(상장 전 지분 투자) 당시 2026년 7월까지 IPO를 성사하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코스피 상장을 위해선 최근 사업연도 매출액 1000억 원 이상, 3년 평균 700억 원 이상을 기록해야 하고 △영업이익 △법인세차감전계속사업이익 △당기순이익이 나야 한다.
지난해 SK에코플랜트는 매출(연결 기준)과 영업이익 요건은 채웠지만 336억 원의 당기순손실로 인해 상장 조건을 충족하지 못했다. 사업 외형 확대는 물론 재무 건전성 확보를 통한 실적 개선이 급선무인 상황이다.
SK에코플랜트 관계자는 “국내외 경제와 증시 상황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상장 예비심사 청구 시기를 검토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전문가 사이에선 건설 업황과 증시 불확실성이 일정 부분 개선돼야 IPO 또한 순조롭게 진행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두 기업이 IPO를 추진했던 2022년 1월 28일 코스피지수 종가는 2663.34로 2600을 상회했으나 현재는 오히려 지수가 떨어지며 2500선(26일 종가 2520.04)에 머무르고 있어서다.
조정현 IBK투자증권 연구원은 “최근 금리 인하 기대감이 커지고 일부 종목들의 원가율 개선이 가시화되면서 건설사 밸류에이션 상승을 견인하고 있지만, 실제 업황 개선과는 시차가 존재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