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에 대한 잿빛 전망이 잇따르는 가운데 ‘비상 계엄령 선포→해제→탄핵 정국 돌입’이라는 초유의 정치적인 돌발 변수가 발생했지만 소버린 리스크(채무불이행, 국가 신용도 하락 등을 야기하는 것)로 전이될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전망이 제기됐다. 다만, 탄핵 정국이 장기화 될수록 정치 불확실성 및 정책 공백이 발생할 수 있어 금융시장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다.
7일 한지영 키움증권 연구원은 “계엄령 선포 후 해제까지 6시간 밖에 소요가 되지 않는 등 초당파적인 국회 동의로 인해 신속하게 해결됐다는 점은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면서도 “탄핵 정국으로 들어가면 여당과 야당의 서로 다른 정치적인 판단들이 개입되면서 얘기가 달라질 가능성이 존재한다”고 진단했다.
한 연구원은 “탄핵 소추안이 통과되더라도, 180일 이내에 진행되는 헌법재판소 탄핵 심판에서의 탄핵 결정 여부는 재판관 7인 이상 출석, 6인 이상 찬성이 필요한데, 현재 6인 체제로 구성돼 있다는 점이 불확실성 요인(헌재법 23조 1항, 재판관 7인 이상 참석해야 사건 심리 가능)”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탄핵 정국이 장기화 될수록 정치 불확실성 뿐만 아니라 정책 공백도 발생할 수 있다는 점에서 단기적인 주가, 외국인 수급 변동성을 유발할 소지가 있다”고 전망했다.
정치불확실성이 소버린 리스크로 전이될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의견도 내놨다. 이에 대한 근거로 정부의 발빠른 대처를 꼽았다. 4일 한국은행의 비정례 환매조건부증권(RP) 매입, 기획재정부의 증시안정펀드 10조 원 및 채권시장안정펀드 40조 원 가동 준비 등 시장 안정화 조치를 적극 시행하고 있다. 현재 원달러 환율의 경우 1410원대에서 추가 상승 압력이 발생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또 글로벌 신용평가사, 외신, 투자 은행들의 코멘트를 종합해보면, 단기적인 불확실성만 높아질 뿐 주가 하락의 장기화, 소버린 리스크의 전이 가능성 등은 낮게 가져가고 있다.
그는 “사실 3개월 혹은 그 이상의 중기적인 관점에서 봤을 때 국내 정치 리스크가 주식, 채권, 외환 등 국내 금융시장에 미치는 영향력은 제한적이며, 지속성도 길지 않았다”면서 “앞서 두 개의 탄핵 정국 사례를 통해서 확인할 있듯이, 금융시장 가격 변화를 만들어낸 본질적인 요인들은 증시 펀더멘털, 매크로에 좌우되는 편”이라고 말했다.
키움증권에 따르면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탄핵소추안이 발의된 2004년 3월12일 금융시장은 단기적으로 출렁였다. 코스피 지수는 848.8로 전일 대비 2.43% 떨어졌으며 원·달러 환율은 1180.5원로 하루 전보다 11원 상승했다. 국고채(3년)금리는 4.570%로 전일 대비 3.0bp(bp=0.01%p) 뛰었다. 약 2개월 이후 헌법재판소가 탄핵소추안을 기각하자 코스피 지수는 다음 거래일까지 하락하다가 반등했다. 원·달러 환율은 1186원으로 하락 전환해 6월 말 1155원까지 낮아졌다. 국고채 3년물은 4.380%로 전일 대비 1.0bp 내려간 이후 하락세를 이어갔다.
2016년 12월 9일에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소추안이 가결되고 2017년 3월10일 헌법재판소에서 전원 일치 의견으로 탄핵안이 인용됐다. 하지만 시장 충격은 제한적이었다. 탄핵소추안 가결 당일인 9일 코스피지수는 전일 대비 0.31% 하락했으며 원·달러 환율은 1165.95원을 기록해 전일보다 약 7원 정도 상승했다. 하지만, 그 당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에 따른 미 달러 강세와 대외적인 여건이 더 크게 영향을 받았으며, 고 노 전 대통령 탄핵 당시에 비해 상승폭은 제한됐다.
국고채 3년물도 1.735%로 전일 대비 2.6bp 상승했다. 이 역시 트럼프 당선에 따른 대외 금리 상승 영향을 더 크게 받은 것으로 판단된다. 2017년 3월 10일 헌법재판소가탄핵소추안을 인정한 당일 코스피지수는 전일 대비 0.30% 상승하고, 원·달러 환율은 1157.4원을 기록한 이후 지속해서 하락해 1118원까지 낮아졌다.
한 연구원은 “이런 측면에서 봤을 때 국내 증시의 고민거리는 이익과 수출 둔화에 직면해있다”면서 “채권시장도 단기간 정치 불확실성으로 인한 변동성 확대는 불가피하나, 금융당국의 안정화 조치 등을 감안하면 약세 압력은 제한되고, 경기 펀더멘털에 집중하면서 최근의 강세를 이어나갈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는 또 “두 차례 사례(2004년과 2017년) 에서 경험했듯 시장금리는 정치 이슈 자체보다는 경기 펀더멘털과 대외 요인에 좀 더 민감하게 영향을 받았던 것을 확인할 수 있다”면서 “앞으로 시장금리는 결국 대외 요인과 국내 경기에 초점을 맞추어 최근의 강세 흐름이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외환시장은 단기적으로 국내 정치 불확실성에 영향을 받으며 1400원 초반에서 등락을 보일 수 있다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