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제공=블래스트)](https://img.etoday.co.kr/pto_db/2025/02/20250217163303_2137613_1200_870.jpg)
지난밤, 뜻밖의 인물이 뜨거운 감자가 됐습니다. 5인조 보이그룹 플레이브인데요. 이제 막 데뷔한 신인이라서 눈길이 쏠린 건 아닙니다. 플레이브는 2023년 데뷔해 어느덧 활동 3년 차에 접어든, 막 전성기를 연 그룹이죠.
이들이 돌연 화제를 빚은 건 한 라디오 방송의 소개가 계기가 됐습니다. 방송인 김신영이 자신이 진행하는 라디오에서 '아직 플레이브에 적응이 안 됐다'는 취지로 말하면서, 플레이브 팬덤을 중심으로 '그룹을 비하하는 무례한 발언'이라는 비판이 쏟아진 겁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가상의 인물이지 않나'라며 날 선 반응에 공감하지 못하는 모양새인데요. 플레이브가 데뷔한 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이지만, 이들의 '정체성'에 대한 토론에도 불이 붙었죠. 플레이브가 누구길래 정체성 운운하냐는 질문이 나올 수도 있겠습니다. 플레이브는 일반적인(?) 아이돌 그룹과는 '그림체'부터 다른, 버추얼 아이돌입니다.
![▲방송인 김신영. (출처=씨제스 엔터테인먼트 제공, MBC '정오의 희망곡' '사연과 신청곡' 게시판 캡처)](https://img.etoday.co.kr/pto_db/2025/02/20250217163938_2137617_1200_800.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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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신영은 16일 MBC FM4U '정오의 희망곡 김신영입니다'에서 플레이브의 '대시'(DASH)를 들은 후 "(플레이브의) 데뷔가 2년 됐잖냐"고 말문을 열었습니다.
래퍼 행주가 "어떻게 적응이 좀 됐느냐"고 묻자 김신영은 "안 됐다"고 답했죠.
김신영은 "얼마 전에 제가 너무 '킹받는’(열받는) 게, 고영배 씨가 플레이브 멤버와 사진을 찍었더라. 저 진짜 깜짝 놀랐다"며 가수 고영배의 라디오 방송에 플레이브가 출연한 일을 언급했는데요. 이어 "고영배 씨는 (플레이브와) '어떻게 녹음했지? 어떻게 방송했지?' 생각이 드는 것"이라고 의아함을 드러냈습니다.
이에 행주는 "못 만난다. 제가 버추얼 그룹이랑 친하잖나. 일단 그분들이랑 만날 수 없다. 다른 세계에 살고 있으니까"라고 플레이브의 세계관을 설명하며 "그분들이랑 소통할 수 있는 건 오직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상"이라고 전했습니다.
그러자 김신영은 "미치겠네. 고영배 씨 혼자서 저렇게 찍은 거 아니냐"고 되물었고, 행주는 "합성이다. 이분들이 다녀갈 수는 있는데 영배 형님이 그 자리에 가서 사진을 찍은 것"이라고 웃었죠.
김신영은 "진짜 솔직하게 말씀드리는데 우리 방송에 못 나온다. 나 '현타' 제대로 올 것 같다. 안 보이는데 어딜 보냐고. 그래도 우리가 이런 문화를 이제 받아들여야 한다"면서도 "아직 저는…"이라고 말끝을 흐렸습니다.
해당 발언은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빠르게 확산했습니다. 이후 라디오 '사연과 신청곡' 게시판에는 플레이브 팬들의 항의가 빗발쳤는데요. 김신영의 개인 인스타그램 댓글에도 비난이 쏟아졌죠. 일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도를 지나친 악플(악성 댓글)까지 이어졌고, 김신영은 결국 모든 게시물을 비공개로 전환해야 했습니다.
김신영은 이튿날인 17일 라디오를 통해 자신의 발언을 사과했습니다. 그는 "어제 플레이브에 관한 이야기를 했는데 여러분의 말처럼 제가 시대의 흐름을 읽지 못했다"며 "플레이브는 지금껏 열심히 활동해왔는데, 제가 무지를 넘어 무례했다"고 밝혔습니다.
이어 "그들을 응원하는 팬분들도 좋은 주말을 보내야 했는데, 제 말 한마디의 무게감과 책임감을 절실히 느낀다"며 "다시 한번 머리 숙여 사과드리겠다. 앞으로도 이런 일 없도록 많이 공부하겠다. 많이 공부하고 배우고 오도록 하겠다"고 강조했죠.
그러면서 "사실은 어제 SNS에 (사과 글을) 올릴까 생각했다. 그러다가 '라디오를 통해서 얘기를 내뱉었는데 글로 쓴다?' 너무 염치가 더 없을 것 같다고 생각해서 제 목소리를 통해서 죄송하다고 말씀드리고 싶었다"고 재차 사과의 뜻을 전했습니다.
![▲(사진제공=블래스트)](https://img.etoday.co.kr/pto_db/2025/02/20250217164053_2137619_1200_1200.png)
플레이브는 버추얼 보이그룹입니다. 이들을 설명할 때 독자적인 세계관을 빼놓을 수 없는데요. 가상 세계 카엘룸에 살던 캐릭터들이 지구의 개발자로부터 능력을 부여받아 아스테룸으로 오게 됐고, 균열을 통해 테라(지구)와 소통할 수 있게 됐다는 설정 아래 활동 중이죠.
아이돌 그룹의 세계관 자체가 새롭진 않습니다. 올해로 서른 살 생일을 맞은 국내 굴지의 가요기획사 SM엔터테인먼트는 론칭하는 그룹마다 독창적인 세계관을 선보이는데요. 독보적인 콘셉트, 각각의 멤버가 지닌 특별한 아이덴티티가 누적되면서 회사 자체가 하나의 장르가 됐습니다.
특히 2012년 데뷔한 보이그룹 엑소는 멤버마다 다른 초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설정의 세계관으로 당시 K팝 신에 충격을 안겼고, 이를 기반으로 다양한 콘텐츠를 선보이면서 팬덤 문화를 더욱 확장했죠. 이른바 '엑소 플래닛'(EXO-Planet)으로 불리던 엑소의 세계관에서 나아가 SM엔터테인먼트는 소속 아티스트들이 모두 연결된 거대한 세계관 'SMCU'(SM Culture Universe)까지 구축한 바 있습니다. 창립자인 이수만 프로듀서가 회사를 떠난 후에도 확고한 콘셉트를 지닌 그룹들의 데뷔가 이어지면서 K팝 팬들을 즐겁게 하고 있죠.
이에 '외계인'이라는 플레이브의 세계관 자체가 차별화 포인트라고 할 순 없는데요. 이들의 특이한 활동 방식은 K팝 팬들의 시선을 한몸에 받기 충분했습니다. 플레이브는 엄연히 '사람'입니다. 정확히 말해선 카메라와 특수 장비 등을 활용해 사람을 2D 형식의 캐릭터로 변환해 활동하고 있는데요. '그림 뒤에 사람 있다'는 말이 딱 맞죠.
플레이브 멤버 예준·노아·밤비·은호·하민은 각각 실제 사람이 가창에 직접 참여하는 것뿐만 아니라 작사와 작곡, 안무를 도맡아 활약합니다. SNS 라이브 방송, 콘서트까지 진행하며 팬들과 소통도 원활히 진행하죠.
이에 '리스크에서 자유롭다'는 사실상 틀린 말입니다. 캐릭터 뒤에 엄연히 사람이 있는 만큼, 열애설은 물론 멤버 간의 불화, 소속사와의 전속계약 문제, 과거 사생활 논란 등이 수면 위로 떠오를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일반 아이돌과 다른 점은 카메라와 화면을 통해 송출된다는 점인데요. 이에 팬덤 사이에서는 '본체를 궁금해하지 않는다'는 암묵적인 룰이 있습니다.
플레이브를 론칭한 이선구 블래스트 대표는 지난해 플레이브의 미디어 쇼케이스에서 이들에 대해 "디지털 '펭수'라고 생각해주시면 좋을 것 같다"며 "펭수라는 캐릭터를 소비할 때 그 뒤에 어떤 분이 있는지 알고 계신 분도 있겠지만, 그걸 파헤치며 지식재산권(IP)을 소비하지 않고 펭수 자체를 즐긴다. 플레이브 역시 뒤에 실연자가 있지만, 이분들의 정체를 파는 쪽으로 IP가 소비된다면 의도했던 방향과는 달라질 것 같아서 본체 공개를 하지 않는 것"이라고 설명한 바 있죠.
소수의 마니아층에만 인기를 끈다고 하기엔 플레이브는 상당한 규모의 팬덤을 보유하고 있기도 합니다.
플레이브는 3일 미니 3집 '칼리고 파트 1'(Caligo Pt.1)을 발매했는데요. 타이틀곡 '대쉬'를 비롯해 '리즈'(RIZZ), '크로마 드리프트'(Chroma Drift), '12:32 (A to T)', '아일랜드'(Island) 4곡의 수록곡을 포함한 5곡 전곡이 각종 음원 스트리밍 사이트 차트 1위부터 5위를 차지하며 '음원 줄 세우기'를 달성했죠. 국내 최대 음원 사이트인 멜론에서는 발매 2시간 20분 만에 앨범 스트리밍 100만을 돌파했으며, 24시간 동안의 누적 스트리밍은 1100만 스트리밍을 달성하며 멜론에서 발매된 전체 앨범 중 24시간 최고 스트리밍 횟수를 보유한 밀리언스 앨범에 등극했습니다.
초동에서도 기록을 썼습니다. 한터 차트 집계에 따르면 이번 앨범의 초동(발매 첫 일주일간 음반 판매량)은 103만8308장으로 103만 장을 돌파하며 '커리어 하이'를 달성했습니다. 데뷔 앨범 초동이 2만7000여 장이었던 플레이브는 이번 기록으로 올해 보이그룹 최초, 또 역대 버추얼 아이돌 최초로 초동 100만 장을 돌파한 그룹이 됐는데요. 빠르게 변화하는 음악 산업 패러다임의 선두에 있는 셈입니다.
![▲버추얼 아티스트 나이비스. (사진제공=SM엔터테인먼트)](https://img.etoday.co.kr/pto_db/2025/02/20250217164315_2137620_1200_1200.jpg)
다만 엄격한(?) K팝 팬들의 기준 탓일까요? 플레이브는 아직 '서브컬처'(하위문화)의 진입 장벽을 완전히 허물진 못한 모습입니다.
이번 김신영의 라디오 발언 논란에서도 이를 체감할 수 있었는데요. 플레이브 팬덤의 비판 여론에 대해 '버추얼 아이돌의 특성을 잘 모르는 사람들을 고려하지 않은 지나친 비난'이라는 주장이 속속 제기된 겁니다.
한 네티즌은 "팬들 입장에서 기분 나쁠 수는 있지만, (김신영이) 사과까지 할 일인지는 잘 모르겠다. 버추얼 아이돌에 대한 인식 차이는 어쩔 수 없지 않냐"고 말했고요. 또 다른 네티즌은 "단체로 항의와 라디오 하차 요구를 할 정도의 사안이냐. 이를 떠나 김신영은 라디오에서 죄송하다고 사과했다. '그림 뒤에 사람 있다'고 악플 쏟아낸 팬들은 김신영에게 사과 안 하나"라고 지적했죠.
당초 버추얼 기술을 활용한 콘텐츠가 라이브 방송 플랫폼 등을 통해 소수의 마니아층 사이 향유되던 문화이긴 합니다. 하지만 플레이브의 팬덤은 급속도로 확장하고 있고, 우리 일상 곳곳에서도 이들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는데요. 플레이브는 지난해 서울 잠실실내체육관에서 진행한 콘서트를 전석 매진시킨 바 있고, 15일 방송된 MBC 음악 프로그램 '쇼! 음악중심'에서는 그룹 아이브, 보이넥스트도어 등을 제치고 1위에 오르는 등 호성적을 써 내려 가고 있죠.
버추얼 아이돌 데뷔도 이어질 전망입니다. 국내 인기 스트리머 겸 유튜버 우왁굳(본명 오영택)이 기획한 6인조 버추얼 걸그룹 이세계아이돌(이세돌), 지난해 8월 데뷔한 5인조 보이그룹 이오닛, 같은 해 9월 SM엔터테인먼트가 론칭한 첫 번째 버추얼 아티스트 나이비스 등에 이어 4인조 걸그룹 아이시아가 올해 상반기 데뷔할 예정인데요. 역시 올해 데뷔 예정인 7인조 보이그룹 스킨즈는 첫 자작곡 '돌아오는 길'이 SBS 드라마 '나의 완벽한 비서' 스페셜 방송 배경음악(BGM)으로 사용되는 등 공식 활동 전부터 눈길을 끌었죠.
나이비스의 경우 인간 본체가 따로 없고 목소리부터 움직임까지 인공지능(AI) 기술을 활용해 구현한 버추얼 아티스트인데요. SM엔터테인먼트의 창립 30주년 기념 앨범에도 나이비스가 부른 보아의 히트곡 '게임'(Game)이 실렸습니다. 비록 대중음악평론가의 혹평을 듣기도 했지만요.
정민재 대중음악평론가는 자신의 SNS에 "나이비스가 부르는 보아의 '게임' 너무 싫다. 목소리를 듣는 순간 불쾌한 골짜기에 들어서는 소름 끼치는 기분"이라고 충격을 토로하며 "나이비스 듣고 충격받은 분들은 원곡을 꼭 들어보시라. 당대의 일렉트로닉 트렌드와 세련된 댄스 팝 사운드가 감각적으로 어우러진 히치하이커의 역작. 이 곡에서 보아의 가창은 들을수록 놀랍다. 탁월한 보컬 테크닉과 쫀득한 밀당의 향연. 전자음 좀 바른다고 될 노래가 아니다"라고 강조한 바 있습니다.
그러나 AI 기술 발전 등에 따라 제작과 활용이 용이해지는 만큼 버추얼 아이돌의 완성도와 대중 접근성은 빠르게 높아질 것으로 보이는데요. 플레이브 다음으로 괄목할 성적과 큰 팬덤을 보유하게 될 버추얼 아티스트는 누가 될지도 궁금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