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국내 기업 최대 의약품 수출국인 만큼 타격 우려
셀트리온‧삼성바이오 등 국내 기업 대응책 마련에 분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수입 의약품에 최소 25% 이상의 관세를 부과한다고 밝힌 가운데, 국내 제약‧바이오업계가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최종안이 확정되지 않아 신중하게 대응한다는 방침이지만 미국이 국내 기업의 최대 의약품 수출국인 만큼 타격은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19일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국내 제약·바이오기업들이 미국의 의약품 관세정책에 대한 대응책 마련에 나서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18일(현지시간) 기자회견에서 “의약품에 관세 25% 이상을 부과할 것”이라며 “관세는 1년에 걸쳐 더 인상될 것”이라고 발표했다. 의약품 관세에 대한 구체적인 기준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현지 시장에 진출한 국내 기업에 상당한 부담이 될 전망이다.
관련 뉴스
미국은 국내 기업의 최대 의약품 수출국이다. 관세청에 따르면 지난해 국산 의약품의 미국 수출액은 13억5900만 달러(약 1조900억 원)다. 2015년 3300만 달러(약 470억 원)에 불과했던 수출액은 10년 새 20배 이상 늘었다.
그러나 의약품에 관세를 부과하면 국내 기업이 미국 시장에 진출하는데 생산 비용이 늘어나고 공급망에도 차질이 생길 수 있다. 바이오시밀러를 개발하고 수출하는 셀트리온과 삼성바이오에피스가 대표적이다. 이들은 대응 전략을 구축하면서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
셀트리온은 이날 관세 부과 가능성에 대해 상황별 대응 체계를 구축해 영향을 최소화하고, 올해 상반기 현지 생산시설 확보를 위한 투자에 나선다고 밝혔다. 회사 관계자는 “올해 미국에서 판매 예정인 제품의 9개월분 재고 이전을 완료해 관세 영향을 줄였다”라며 “상반기 중에는 현지 원료의약품 생산시설 확보 결정을 마무리한다”고 설명했다.

삼성바이오에피스는 관세정책에 대해 확정된 것이 없어 상황을 지켜보겠다는 입장이다. 회사는 현재 글로벌 곳곳에서 원료의약품과 완제의약품을 위탁생산(CMO) 생산하고 있다.
위탁개발생산(CDMO) 기업 삼성바이오로직스도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 글로벌 상위 제약사 17곳을 고객으로 두고 있는 만큼 계약 물량 상당 부분을 미국으로 수출한다. 삼성바이오로직스 관계자는 “아직 관세정책이 명확하게 결정이 되지 않은 만큼 확정되면 검토할 예정”이라고 했다.
뇌전증 치료제 세노바메이트를 미국에 판매하는 SK바이오팜은 상황에 따라 CMO 교체도 염두에 두고 있다. SK바이오팜은 국내 세종공장에서 생산한 원료로 캐나다에서 완제품을 생산해 미국에 수출한다. 회사 관계자는 “관세 관련 내부 시나리오가 준비돼 있으나 부과 확정 전에 공개하기는 어렵다”라면서도 “캐나다도 관세 대상이면 CMO 공장을 바꾸는 것도 방법”이라고 말했다.
대부분의 국내 제약 기업은 후보물질 단계에서 라이센스 아웃(기술이전) 계약을 체결했기 때문에 관세를 부과해도 큰 타격을 받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국산 항암제 최초로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을 받은 유한양행의 렉라자는 2018년 존슨앤드존슨(J&J) 자회사 얀센에 기술수출됐다. 미국에서 직접 생산해 판매하는 만큼 유한양행은 관세 영향을 받지 않는다. 유한양행 관계자는 “국내 생산 완제품을 판매하는 게 아니라 판매에 대한 로열티와 마일스톤(단계적 기술료)을 받는 만큼 미국의 관세 정책에서 자유롭다”고 설명했다.
또 보툴리눔 톡신으로 미국 시장에 진출한 대웅제약과 휴젤은 구체적인 관세 정책이 발표되지 않은 만큼 상황을 면밀히 살펴보고 있다고 밝혔다. 품목이나 세율이 결정된 후 구체적인 대응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다.
업계에선 정부와 협력해야 한다는 의견과 함께, 관세로 인해 미국 의약품 가격이 상승할 수 있어 영향은 제한적일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이승규 한국바이오협회 부회장은 “관세정책이 실행되면 국내 기업이 영향을 받겠지만, 세계적으로 역량 있는 바이오시밀러와 CDMO 시장에서 경쟁력 확보를 위해 외교 문제도 있어 정부와 산업계가 긴밀하게 협조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과거 트럼프 1기 행정부 당시와 마찬가지로 의약품 관세 부과 가능성이 크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앞서 트럼프 1기 때 의약품 가격 상승과 공급 부족 우려 등의 이유로 실제 관세 부과까지 이뤄지지 않았다.
정윤택 제약산업전략연구원장은 이날 본지와의 통화에서 “트럼프 1기 당시 의료비 부담이 커질 것을 우려해 바이오시밀러와 제네릭은 관세 부과 대상에서 제외됐다”라면서 “미국 내 관련 단체 등에서도 제네릭(복제약)과 바이오시밀러에 관세를 부과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의견을 표명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정 원장은 “의약품 CDMO, CMO 업체들도 관세에 민감할 수 있으나, 대부분 의뢰 기업이 미국 회사인 점도 고려해야 한다. 관세를 부과하게 하면 미국이 더 손해를 볼 가능성이 크다. 결국 위탁개발생산(CDMO)도 바이오시밀러도 큰 영향을 받지 않을 것으로 예상한다”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