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권 “환율변동성에 더해 밸류업 차질 가능성”
대출 취급 여력 줄어 주담대 실수요자 피해 우려도

금융당국이 검토 중인 은행권 신규 취급 주택담보대출 위험가중치 하한선 상향 조정이 과도한 규제라는 논란에 휩싸였다.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를 위한 정부의 핵심 과제인 밸류업(기업가치 제고) 실현을 위한 은행권 전략에 역행하고, 주담대 공급이 줄어 실수요자가 피해를 볼 수 있는 만큼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4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당국은 가계대출 급증 ‘제동 장치’로 은행 신규 취급 주담대 위험가중치 하한선 상향을 준비 중이다. 앞서 권대영 금융위 사무처장은 지난달 26일 열린 가계부채 점검회의 사전 브리핑에서 “향후 가계부채가 크게 증가하는 경우에 대비해 위험가중치를 즉시 상향하는 등 거시건전성 규제를 시행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현행 금융감독원 은행업감독업무시행세칙상 15%인 주담대 위험가중치 하한을 높이겠다는 것이다.
위험가중치는 자산의 위험 수준을 나타내는 비율로 대출 원리금을 떼일 가능성이 큰 대출일수록 높다. 통상 담보가 확실한 주담대는 신용대출, 중소기업대출 등 다른 상품보다 위험가중치가 낮다. 위험가중치 수준은 은행별 내부등급법에 따라 다르게 적용되지만, 대체로 주담대가 15~20%, 기업대출이 40~45% 수준이다. 일부 시중은행은 주담대 위험가중치를 하한선인 15%로 설정해 놓고 있다.
금융당국이 위험가중치 하한선을 높이면 은행은 대출 규모를 줄일 수밖에 없다. 위험가중치가 높은 대출이 늘면 위험가중자산이 증가하고, 건전성 지표인 보통주자본비율(CET1)이 하락하기 때문이다. 주주환원과 직결되는 밸류업 계획에 악영향이 불가피하다. CET1을 12.3~13.5% 수준으로 유지해 주주환원율 50%를 달성하겠다는 목표에 차질이 생길 수밖에 없다.
한 은행 관계자는 “은행들이 올해 기업대출을 무작정 확대하지 않고 ‘적정 성장’하겠다고 강조한 것도 위험가중치가 높은 대출 규모를 늘리지 않기 위한 것”이라며 “주담대 위험가중치를 높이면 CET1 하락을 막기 위해 주담대 공급이 축소될 수 있다”고 토로했다.
다른 은행 관계자도 “환율 변동성이 여전한 상황에서 부담스러운 조치”라며 “은행의 자본비율에 영향을 줄 수 있고, 주담대 실수요자에 대한 공급도 축소될 수 있기 때문에 당국에서 신중한 고려가 필요하다”고 했다.
금융당국은 급속한 조정은 없다면서도 가능성은 열어뒀다. 금융위 관계자는 “가계부채 증가세가 지금보다 확대되면 (은행권 주담대 위험가중치 하한을) 조정할 예정”이라며 “구체적인 상향 수준과 시행 시점은 내부적으로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금융당국이 위험가중치 하한선 조정을 유력한 가계부채 관리 카드로 꺼내 들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향후 대출 문턱이 낮아지면서 가계대출 증가세가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주요 은행들은 지난달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하분을 반영해 업무 원가, 신용 리스크 등을 반영한 가산금리를 낮추는 등 가계대출 금리를 내리고 있다. 이날 NH농협은행은 이달 6일부터 비대면 주담대 상품의 금리를 최대 0.30%포인트(p) 낮추기로 했다. 앞서 우리은행도 지난달 28일 신규 취급 주담대 5년 주기형 상품의 가산금리를 0.25%p 인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