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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초부터 글로벌 경기침체 여파로 분기, 월 단위의 사업계획을 짜왔던 재계는 매 분기 실적 발표 때 마다 살얼음 위를 걷는 심정으로 버텨 오고 있다.
그나마 우리 경제의 저력을 인정한 외국인들의 주식 매수세로 증시는 회복 기미를 보이고 있는 게 다행이다 싶다.
벌써부터 일부 대기업은 예년과 달리 내년초가 아니라 올 연말에 대대적인 경영진 교체가 있을 것이란 소리가 공공연히 들리기도 한다. 올 한해 동안 이런 저런 이유로 ‘헛장사’를 했으니 내년에는 제대로 기업활동을 하기 위해 인사를 빨리 해 전열을 정비 한다는 차원에서다.
여러 경기지표상으로는 경기회복을 암시하는 긍정적인 수치가 나오고 있지만 재계의 입장에선 올 들어 10개월이 넘게 드리우고 있는 경제의 불확실성은 여전히 뿌연 안개속이다.
올 들어 재계를 안개속의 터널로 몰아 넣은 이슈 중 큰 하나는 기업인수·합병(M&A) 이었다.
마땅한 신수종 성장동력을 찾지 못하던 대기업들이 정부가 과거 지분을 사들였던 대형 기업들을 팔겠다고 하자 ‘쓸만한 것 없나’ 하는 심정으로 M&A시장에 뛰어 들었다.
그러나 올 들어 이렇다 할 기업들의 M&A 성공사례는 별로 찾아보기 힘들다.
누가 옳던 그르던 간에, 어떤 대기업은 그룹의 사활을 걸고 새 사업 진출을 위해 M&A에 나섰다가 생돈만 날리게 됐다.
어떤 기업은 불과 3년 전에 인수했던 기업을 ‘토해내고’ 그룹 전반에 걸친 구조조정을 하지 않으면 안 될 처지에 놓였다.
기업의 주인이 바뀔 때 마다 임직원들은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아 안절부절 하게 되고, 그러다 보면 생산성이 떨어지고, 더욱 악화 돼가는 대외적인 업황 변동에 대처하지 못해 기업가치가 떨어지고, 결국엔 만신창이가 되고 말았다.
오죽하면 한 기업체 과장은 올 들어 대학 동창들과 만나면 “어이 친구, 너희 회사 이번에는 주인이 딴 사람으로 또 바뀐다며” 라는 소리가 듣기 싫어 동참 모임에 안 나간다고 말할 정도일까.
정부의 ‘매각 계획’ 한마디에 인수 피인수 기업들의 주가가 주식시장에서 요동치고, 결과가 뒤집혀 손실을 본 투자자들이 증권사 영업장에 몰려 항의하다가 1년이 거의 다 갔다.
최근에는 한 기업이 어떤 기업을 인수하겠다고 밝혔다가, 국정감사에 주요 이슈로 떠올라 정치권 싸움으로 번지는 등 벌집을 쑤셔 놓고 말았다.
M&A가 어디 동네 개구장이들의 장난인가.
물론 M&A가 나쁘다는 게 아니다. M&A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수시로 일어나는 역동적인 기업활동의 한 단면이요, 현대 기업사회의 한 진화 과정이다. 또 국내에서도 타 기업을 인수해 완전 새로운 우량기업으로 탈바꿈시킨 예도 많다.
그러나 문제는 올 한 해를 돌아보면 경기침체기를 맞아 재계가 아무런 수확도 얻지 못한 곳에 너무 열정을 쏟아 부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제 앞으로 남은 2009년 두어달 동안은 재계가 정부의 눈치를 보거나 소모적인 경쟁보다는 경기회복이 가시화 될 것이란 내년을 준비하는데 더욱 신경을 썼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