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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서 교육현장에서 직접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교사들에게 그 책임의 화살을 돌리고 있다. 심지어 수사기관이 학교폭력이 발행한 학교의 해당 교사에게 폭력을 방치했다는 이유로 직무유기죄로 입건 수사하는 사태까지 벌어지고 있다.
그 교사에게 지도하는 학생들의 폭력사태에 형사적 책임을 물을 수 있는가 하는 문제는 구체적 사안을 살펴보기 전에는 판단하기 어려운 문제이지만 적어도 그런 방식으로는 학교폭력 문제에 본질적으로 접근해 해결하기 어렵다.
학교 내에서 폭력은 최근 갑자기 대두된 문제가 아니라 과거부터 존재해 온 문제다. 어떤 사건을 계기로 다시 한 번 심각하게 존재해 왔던 학교폭력의 문제에 관심이 증대된 것 뿐이다.
원인과 대책에 여러 전문가와 관계자들이 의견을 내면서 대책회의를 벌이고 있지만 사실 그 문제는 호들갑을 떨 듯이 풀어나갈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혹자들은 이 시대 청소년들의 사회적 인성에 어떠한 문제를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하면서 그 이유는 지금의 청소년들이 게임기, 컴퓨터, 스마트폰 등 기계와의 접촉시간이 과도할 정도로 많다보니 실제로 사람과 부대낄 시간이 적어지면서 인간관계를 적절히 형성할 수 있는 기회가 줄어든 것이 원인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그런 지적이 지금의 현상을 설명하는데 어느 정도 타당하다고 생각되지만 결국은 청소년들이 기계와의 접촉시간이 지나치도록 내버려둔 부모, 교사를 포함한 어른들이 청소년들과 소통하는데 게을리함으로써 학교폭력의 잔인성과 지속성이 심각한 사태에 이르렀다고 봐야 한다.
자녀 또는 제자가 폭력에 노출돼 있는 피해상황인지 그 정도가 얼마나 심각하지 반대로 폭력을 심각하게 행사하고 있는지를 인식조차 하지 못하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즉 소통의 부재가 있었기에 이토록 심각해지도록 아무도 문제를 인식하고 해결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다.
부모나 교사는 아이들이 현재 어떠한 상태에 있는지 파악하는 ‘소통’을 위해 지금보다 더 노력해야 할 것이다. 그런 소통의 전제 하에서 발생하는 개별적인 폭력성의 원인을 진단, 해결하려는 각종 시스템도 갖춰 나가야 이런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
그것이 기계와의 접촉시간을 줄이는 각종 제도이든 사회적 부대낌을 증대할 수 있는 동아리 활동이나 체육시간을 늘리는 것이든 모든 출발은 자녀 또는 학생들과의 소통을 늘려서 그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이해하려는 노력을 기울이는데서 출발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