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그룹의 부서간 역학구도가 최근 미묘하게 변화되고 있다.
전 세계 생산기지에서 차량을 수백만대 생산하는 글로벌 완성차업체는 대부분 구매, 판매부문이 사내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부서다. 그러나 현대차는 최근 재경부문 인사의 승진인사를 연이어 실시하고 있어 관심이 집중된다.
현대차그룹은 지난 6월에는 강학서 현대제철 재무본부장을 부사장에서 사장으로 승진시켰다. 7월에는 박한우 기아차 재경본부장, 지난주 이원희 현대차 재경본부장이 각각 부사장에서 사장으로 직급이 상향 조정됐다.
현대차 고위 관계자는 “재경부문이 이처럼 잇따라 승진한 것은 (그룹에서) 보기 드문 사례”라며 “현대차그룹 임원들도 재경부문의 약진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눈여겨 보고 있다”고 말했다.
현대차 안팎에서는 최근 현대차그룹의 고위 경영진 인사는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의 의중이 담긴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현대차는 지난해 말 권문식 연구개발본부장(사장)이 물러난 뒤 박정길 전무가 설계담당 부사장으로 승진했다. 지난해 12월에는 윤준모 현대다이모스 부사장은 현대위아 사장으로, 여승동 현대기아차 파이롯트센터장(부사장)은 현대다이모스 사장으로 각각 승진 발령했다. 품질부문 강화를 위한 인사다. 이어 올해 2월에는 지난해 물러난 권 사장이 다시 연구개발본부장으로 복귀했다.
정 회장의 지난해 인사의 키 포인트는 연구개발·품질부문의 강화였다면, 올해는 재경부문의 인적 영향력 강화로 축을 옮긴 것으로 해석된다.
업계는 이같은 인사의 축 이동이 글로벌 메이커로의 도약에 필수적인 과정으로 해석하고 있다. 글로벌 시장이 포화상태에 이르면서 구매 부문 이외에 연구개발과 재경부문을 강화하는 체질 개선에 나선 것. 일본 토요타 역시 지난 4월 엔지니어와 생산 등 현장을 목소리를 강화하는 역할을 맡는 사무국을 신설했다.
현대차의 재경부문 강화 인사가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 시대를 준비하는 과정이란 시각도 있다. 현대차그룹이 정 회장 체제로 들어선 뒤 재무부문에서 가장 영향력 있던 인사는 이정대 전 현대모비스 부회장이다. 그는 현대차 비자금 사건 때 재경본부장을 맡으며 정 회장을 측근에서 보좌했다.
이 전 부회장이 2012년 물러난 뒤 현대차그룹에서는 재무부문에서 두각을 보이는 고위 경영진은 없다. 업계에서는 정 부회장이 중용할 인사가 올해 말 부회장으로 승진할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