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주주인 KDB산업은행과 최대 채권은행인 한국수출입은행은 다음 달 초부터 신규 출자 및 대출 방식으로 총 4조2000억원 규모의 유동성을 지원한다. 한 기업을 살리기 위해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우리나라 국민 5000만명이 8만원씩 분담하는 꼴이다.
문제는 이번 지원으로 대우조선 경영이 단숨에 정상화하리란 보장이 없다는 점이다. 방만한 경영, 무리한 수주 경쟁 등 경영진의 잘못이 있지만, 무엇보다 업황의 불확실성이 여전히 크다. 인력 감축만으로 해결될 일이 아니란 얘기다.
대우조선을 사상누각으로 만든 주된 원인인 해양플랜트의 경우 국내 다른 업체들도 역량 부족, 과당 경쟁, 유가 하락 등으로 인해 시장 침체의 늪에 빠져 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선주사의 수익성 악화에 따른 계약 취소, 선박 인도 지연 등 건조 과정에서 증가한 원가 및 수주 잔금을 보전받기 어려운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특히 세계 조선시장의 주도권이 일본, 한국을 거쳐 저가 수주를 무기로 앞세운 중국으로 넘어간 상황에서 대우조선이 ‘옛 영광’을 되찾기는커녕 점점 더 힘들어질 것은 뻔하다.
산은 역시 업황 부진을 이유로 대우조선의 부족자금이 누적 기준 올해 1조8000억원, 내년 상반기에만 4조2000억원이 발생할 것으로 예측했다.
그렇다고 대우조선의 워크아웃이나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를 추진하기는 현실적인 어려움이 따른다.
일단 워크아웃에 들어가면 채권은행들이 최우선적으로 자금 회수에 주력하는 만큼 경영 리스크는 증가할 수밖에 없다. 아울러 신인도가 떨어져 신규 수주는 거의 불가능하다. 일부 선주사의 경우 워크아웃을 빌미로 계약을 취소하는 사례도 있을 수 있다.
법정관리에 들어가면 상황은 더 심각해진다. 대우조선은 올해 3분기까지 4조3003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은행권의 신용공여 합계는 23조원을 훌쩍 넘는다. 법원은 대우조선의 존속 가치를 ‘제로(0)’로 판단할 게 자명하다.
대우조선이 문을 닫으면 1만3000여명의 근로자가 한순간에 일자리를 잃게 된다. 더불어 1000개가 넘는 협력업체가 연쇄적으로 휘청이게 된다. 대우조선의 연고지인 경남 거제 인근의 지역경제에 악영향이 불가피하다.
대우조선을 둘러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답답한 상황이 연출된 것이다. 조선 업종에 대한 근본적인 구조조정이 필요하다는 금융당국의 고민은 바로 이러한 점에서 출발한다.
눈길을 끄는 대목은 정부발로 흘러나온 대우조선과 삼성중공업의 합병설이다. 현대중공업은 그대로 두되 규모가 비슷한 두 회사를 합쳐 ‘빅2’ 체제로 바꾸자는 것인데, 삼성그룹이 지난해 말 한화그룹과 진행한 2조원 규모의 ‘빅딜’이 회자된다.
삼성은 비주력 계열사를 정리하며 사업 재편 효과를 봤고, 한화는 방산·화학 부문의 경쟁력을 강화했다. 일각에서 삼성과 산은이 충분히 검토해 결단을 내린다면 큰 힘을 들이지 않고 조선산업 구조조정이 가능할 것이라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삼성은 최근 나머지 화학 계열사도 롯데그룹에 모두 넘기기로 했다.
비록 ‘설’에 불과하지만 어찌됐든 대우조선은 뼈를 깎는 구조조정이 필요하다. 대규모 부실에 대한 책임 소재도 분명히 가려야 한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로 국민에게 다시 부담을 전가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