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닭은 AI에 감염되면 거의 100%에 가까운 폐사율을 보인다. 오리는 바이러스에 좀 더 강하다고 하지만 바이러스 전염 우려 때문에 AI 발생 인근 가금류는 모두 살처분해야 한다.
방역당국과 농가, 업계는 2016년을 생각하면 아찔하다. 당시 AI가 퍼지면서 국내 닭과 오리 전체 사육 수의 17%에 해당하는 3300만 마리가 살처분됐다. 피해액만 1조 원대로 추정된다. 생산자뿐만 아니라 소비자들은 가격 폭등으로 달걀을 먹기가 어려워지기도 했다. 올해는 이미 39만200마리가 살처분됐다.
사실 이번 AI는 피해갈 수 없는 상황에 더 가까웠다. 해외, 주변국에서 AI 발생이 급격히 늘었다. 특히 올해 국내를 찾은 겨울 철새만 100만 마리에 달할 정도로 야생철새의 수가 크게 늘었다. 이미 10월부터 야생조류 분변에서는 고병원성 AI가 꾸준히 나왔다. 지금까지 ‘야생조류-농장’ 연결고리가 끊어진 적이 없었던 만큼 전북 정읍 오리농장에서 AI가 발병했을 때도 ‘올 것이 왔다’는 반응이 더 컸다.
다만 분위기는 예전과 조금 달랐다. 지금까지는 야생조류에서 AI가 발생하면 짧게는 며칠에서 길어야 1~2주에 모두 가금농장으로 전파됐다. 반면 올해는 한 달이 넘도록 농장으로 전파되지 않아서 연결고리가 끊어졌는지 하는 생각을 가지기도 했다. 아쉽게도 연결고리를 끊지는 못했지만 가능성은 엿볼 수 있었다.
방역당국은 AI를 막기 위해 꾸준히 준비해왔다고 자부했다. 김현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가축질병 예방을 농정의 큰 목표로 내세우기도 했다. 방역당국의 이 같은 절치부심(切齒腐心)이 빛을 발하기 위해서는 추가 전파 확산을 차단해야 한다. 농가 전파를 막지 못한 것은 불가항력이라 하더라도 피해를 얼마나 줄이느냐가 관건이다. 물론 방역당국에만 맡겨서는 안 된다. 농민들은 방역수칙을 엄격하게 지켜야 하고, 일반인들도 경각심을 가지고 철새 도래지나 농장 방문을 피해야 한다. 대한민국 곳곳이 아파하는 지금, 동물 방역에서만큼은 모두가 안심할 수 있는 성과가 나오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