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지 생산체계 구축한 韓 기업 유리
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 정체)에 빠진 배터리 업계는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에너지저장장치(ESS)를 주목하고 있다. 특히 태양광 중심의 신재생에너지 비중이 크고, 인공지능(AI) 산업 성장에 따른 전력망 안정화 수요가 급증하는 미국 시장에 기대가 크다.
20일 시장조사기관 글로벌마켓인사이트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 ESS 시장 규모는 789억 달러(약 115조 원)로, 향후 10년간 연평균 13.4% 성장해 2034년에는 3055억 달러(약 445조 원)까지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ESS는 전력을 저장했다가 필요할 때 공급하는 장치다. 태양광, 풍력 등 재생에너지의 간헐성을 보완해준다. 최근 들어선 AI 데이터센터 확산에 따른 전력 수요 급증으로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
테슬라도 ESS 사업으로 숨통을 틔웠다. 지난해 테슬라의 전기차 판매량은 전년 대비 1% 감소했지만, ESS 출하량은 112% 성장하는 기염을 토했다.
국내 배터리 기업들도 전 세계 시장 규모의 30%를 차지하는 미국 공략을 서두르고 있다. 일부 주에서는 ESS 설치를 의무화하고 있고, 인플레이션감축법(IRA)에 따른 투자세액공제(ITC)를 제공하는 등 우호적 환경이 조성됐다.
현재까진 LG에너지솔루션이 대규모 수주를 연달아 따내며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은 2022년 미국 NEC에너지솔루션을 인수하고 ESS 시스템 통합(SI) 전문 미국 법인 버테크를 출범하며 미국 내 사업 기반을 다졌다. 작년에만 3건의 조 단위 ESS 프로젝트를 수주했다.
삼성SDI는 삼원계 니켈·코발트·알루미늄(NCA) 배터리를 기반으로 한 ESS 배터리 제품 ‘삼성 배터리 박스(SBB)’를 앞세워 글로벌 시장을 공략해왔다. 내년부터는 ESS용 리튬인산철(LFP) 배터리 양산에도 나선다.
SK온도 작년 말 조직 개편에서 ESS 사업부를 대표이사 직속으로 두는 등 사업 준비를 본격화하고 있다. 유정준 SK온 부회장과 이석희 사장은 올해 신년사에서 “ESS로 포트폴리오를 다각화하고, 미래 기술 경쟁 우위를 확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트럼프 2기 행정부의 강력한 중국 견제 기조도 우리 기업들에는 기회가 될 전망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당선 전부터 중국산 제품에 최대 60%의 고율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공언했다. ‘폭탄 관세’가 현실화할 경우 저렴한 LFP 배터리를 앞세워 ESS 시장을 장악해온 중국 업체들의 입지는 줄고, 미국 현지에 생산 체계를 구축한 국내 기업들이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