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묘한 데자뷔(기시감)는 비단 본인만의 경험이 아닌 듯싶은 요즘이다. 최근 심상치 않게 계속되는 소비재 가격 인상 흐름이 8년 전 그때와 꽤 닮아있는 탓이다. 계엄 사태가 발생한 이후 작년 말부터 올해 설 직전까지 오리온과 해태, 동서식품, 농심, 동아오츠카, 대상 등 국내 주요 식음료 업체들이 적게는 10% 이하로, 많게는 20%가량 잇달아 가격을 인상했다. 스타벅스와 폴바셋·할리스 등 주요 커피 전문점도 200~400원, 버거킹·맘스터치 등 국내 대표 햄버거 프랜차이즈도 100~300원 등 주요 제품 값을 일제히 인상했다. 이달부터는 오뚜기가 편의점에서 판매하는 컵밥 7종의 판매가격을 12.5% 인상한다고 밝혔다.
업체들의 가격 인상 관련 항변은 현 시점에선 누가 봐도 타당해 보인다. 계엄 사태 이후 원·달러 환율이 급등했고 그에 따른 원재료 수입 부담이 더 커졌다. 여기다 전기료 등 공공요금, 물류비, 인건비 등도 계속 오름세다. 이런 겹악재로 인해 기업도 더는 버티기 힘들고 결국 가격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주장이다. 이런 현상은 8년 전에도 있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 정국이 본격화 되면서 주요 식품기업들은 연말연시 일제히 가격 인상 대열에 동참했다. 박 대통령 탄핵심판이 한창이던 2017년 초에는 식품류 가격이 평년 상승 폭의 2배에 달하는 7.5%까지 뛰었다.
문제는 이런 가격 인상 기조가 설 이후에도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이 진행되는 향후 한 두달 동안 가격 인상은 계속 될 전망이다. 업계 일각에선 정부의 가격 컨트롤타워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현 탄핵 정국이야말로 가격 인상에 최적기라는 이야기마저 나온다.
앞서 윤석열 정부는 집권 이듬해인 2023년부터 본격적으로 물가 잡기에 돌입, 기업의 판매 가격 옥죄기에 열을 올렸다. 일명 ‘빵 서기관’ ‘라면 사무관’이 2012년 이명박 정부 이후 11년 만에 부활했을 정도로 정부의 물가관리 정책은 매우 엄격했다. 당시 한 식품기업 관계자는 “원재료 부담이 심해 (가격 인상) 때를 보고 있는데 여의치 않다”고 볼멘소리를 했었다.
그런데 최근 만난 일부 식음료 기업 관계자들은 어쩐지 여유가 있어 보인다. 여러모로 대내외적 명분이 많은 데다 정부도 사실상 손을 놓고 있으니, 마음만 먹으면 가격 인상은 순식간에 가능하기 때문일까. 이런 의구심을 표하자, 업계의 또 다른 관계자의 목소리가 꽤 높아진다. “작년 총선을 앞두고 물가 안정 압박이 커 한 차례 숨을 고르다가 타이밍을 놓쳤다. 작년 말부터 가격 인상 요인이 거세져 더는 버틸 수 없어, 연말연시 릴레이 가격 인상으로 보일 수 있다.” 그의 이런 설명이 부디 팩트(Fact)이길 바래본다. 그래야 8년 전 가격 인상과 지금의 그것이 그저 데자뷔로 끝나지 않겠나. ‘처음 겪는 일을 마치 이전에 본 듯 여기는 이상한 느낌이나 환상’. 그것이 데자뷔의 원뜻이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