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영화 제작사 마블 스튜디오의 슈퍼히어로물인 아이언맨에는 인공지능(AI) 비서 ‘자비스(JARVIS)’가 등장한다. ‘그냥 좀 많이 똑똑한 시스템(Just A Rather Very Intelligent System)’을 뜻하는 자비스는 이름과 달리 극중 주인공인 토니 스타크의 말리부 저택 관리나 비서 역할은 물론 아이언맨의 전투 보조 등 광범위한 역할을 수행한다. 영화가 처음 개봉한 2008년 이후 17년 뒤 글로벌 기업들은 ‘자비스’가 되기 위한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인공지능(AI)이 차세대 미래 먹거리로 떠오르면서다.
AI 전쟁은 다방면에서 진행 중이다. 딥시크와 챗GPT 등 소프트웨어간의 경쟁이 치열하게 진행하고 있고,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간의 AI 주도권 싸움도 치열하다. 저성능 그래픽처리장치(GPU)로 개발한 고성능 AI 모델이 AI 소프트웨어 기업에 기회로 작용할 수 있고, AI 사이클이 점차 기업간거래(B2B) 하드웨어에서 B2B 소프트웨어로 전환될 것이란 전망이 힘을 얻고 있다.
일각에서는 전통적으로 소프트웨어가 약한 국내 기업들이 열세에 있다고 평가한다. 그러나 하드웨어에 강한 국내 기업들에도 기회 요인은 있다. AI 산업은 1990년대 인터넷 사업처럼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가 동반으로 성장하는 산업이다. AI 소프트웨어가 시장을 주도하더라도 AI 하드웨어 없인 불가능하다. AI의 궁극적인 목표는 ‘피지컬(물리) AI’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는 CES 2025에서 넥스트 챗GPT로 AI가 물리적 세상을 이해해 로봇이나 차량 같은 실체가 있는 디바이스를 제어하는 피지컬 AI를 꼽았다.
기업들은 AI 시대 주도권 확보를 위해 하드웨어를 버리고 소프트웨어에만 집중하는 오판을 경계해야 한다. 언제 어디서든 AI 비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매개체는 반드시 필요하다. 일종의 ‘AI 리모컨’이 필요한 셈이다. 스마트폰이 될 수도 있고, 안경처럼 쓰고 다니는 AI 글래스나 스마트워치가 이 기능을 수행할 수도 있다. 사람의 이동과 늘 함께 하는 자동차가 될 수도 있다. 최근 만난 증권사 고객자산관리(WM) 임원은 “증권사 각종 보고서나 미국 산업 보고서를 보면 테슬라를 AI 기업으로 인식하고 있다”고 말했다. 스마트폰, 자동차, 각종 전자기기 등은 우리 기업이 가장 잘하고 자신 있는 분야다.
AI 시장을 선점하거나 우세로 보이는 플랫폼과의 협업·투자 등의 기회도 눈여겨봐야 한다. 최근 이재용 삼성전자 화장과 손정의 일본 소프트뱅크그룹 회장, 샘 올트먼 오픈AI 최고경영자(CEO)가 AI 협력 방안을 논의한 것도 이와 비슷한 맥락으로 풀이된다. 약 25년간의 역사에서 알 수 있듯 수많은 산업은 독점적 지위의 플랫폼 사업자 승리로 귀결된 경우가 많았다. 2000년대 초반 닷컴전쟁 후 네이버와 구글, 2000년대 후반 스마트폰 등장 후 안드로이드와 iOS 운영체제, 2010년대 중반 페이전쟁 이후 삼성페이와 애플페이 등이 살아남았다. 유튜브, 배달의민족, 인스타그램, 넷플릭스, 쿠팡 등도 플랫폼 전쟁에서 살아남은 대표적 사례다. AI 시장도 AI 서비스가 한자리에 모일 수 있는 공간을 구축한 독점적 지위의 사업자에 유리하게 흘러갈 가능성이 매우 크다. AI 시대는 변화를 거부하는 기업에는 도태를, 역전을 꿈꾸는 기업에는 도약을 선물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