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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수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통상 판사에 대한 경외심이 크기에 법원이 실수한다는 사실을 잘 믿지 않지만, 판사도 사람이다. 판결문에 오타는 물론이고, 액수를 잘못 기재한 경우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16일 법조계에 따르면 지난해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이혼소송 2심 판결문이 경정(수정)된 사례가 대표적인 법원의 실수로 꼽힌다.
당시 항소심 재판부는 최 회장이 노 관장에게 재산분할로 1조3808억 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2주 뒤 판결문 일부를 수정했다. 재판부는 당초 최종현 선대회장의 기여분을 12.5배로 계산했으나 이를 125배로 10배 늘렸고, 최 회장 기여분은 기존 355배에서 35.6배로 약 10배 줄였다.
이는 재판부의 결정에 ‘치명적 오류’가 있다고 지적하고 나선 최 회장 측의 주장이 반영된 결과다. 다만 재판부는 단순 오기일 뿐 결론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며 주문은 유지했다. 이 사건은 현재 대법원에서 심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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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결문으로 말하는 판사는 사소한 실수라도 사건 당사자에 큰 영향을 미치고 사법 신뢰를 저해할 수 있으므로 더욱 각별한 주의가 요구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보라 정오의 법률사무소 변호사는 법률 자문을 맡은 소송 진행 중 법원에서 받은 공식적인 서류에 자신의 이름이 잘못 기재된 적이 있었다면서 “한번은 법원 서류에 ‘이봅라 변호사’라고 적혀 온 적도 있었다”고 전했다.
구속된 피고인에 대한 법원의 실수는 더 아찔하다. 구속 재판 중인 피고인의 구속 기간은 원칙적으로 2개월이다. 하지만 심급마다 2개월씩 2차례 연장할 수 있기에 두 달씩 늘어날 때마다 구속 기간 갱신 결정을 내리게 된다.
구속은 국민의 인권과 직결된 중요한 사법통제 절차이므로 엄격한 법적 요건을 필요로 한다. 이 때문에 구속영장뿐 아니라 구 속기간 갱신 결정에도 재판장 또는 수명법관의 서명과 날인이 들어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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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변호사는 한 사건에서 피고인의 구속 기간 갱신 결정에 판사가 서명 날인을 빠뜨린 사례를 소개했다. 이 변호사에 따르면 이 사건 피고인은 영문도 모른 채 구속 취소 결정으로 석방됐다가, 며칠 뒤 이를 발견한 판사가 급히 구속갱신 취소 결정을 내렸다.
핼쑥해진 피고인이 몇 달 만에 집에 나타나자 부모님은 귀신을 본 듯 놀랐다고 한다. 잠깐의 석방이 휴가로 느껴질 수도 있지만, 당사자와 가족은 오히려 더 힘든 시간이었다고 했다.
금세 다시 체포하러 올 것이란 불안감과 재판에서 불리한 결과로 이어지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앞서 집 밖을 나갈 수 없었다고 한다. 이 경우 형 집행 종료일은 당연히 미뤄진다.
피고인은 사흘 후 찾아온 경찰에 의해 다시 구속됐지만, 재감되는 과정에서 입소 신체검사와 방 배정을 다시 거쳐 새로 물품을 구입해야 하는 등 불편함도 겪었다고 한다.
꽤 오래전에는 ‘구속 기간 만료’를 깜박한 교도소의 실수로 피의자가 며칠 불법 구금된 적이 있었고, 법원 전산시스템과 판결문에 승소-패소 기재가 바뀌어 천당과 지옥을 오간 사례도 있었다고 한다.
이보라 변호사는 “사람이 하는 일인 만큼 실수가 나올 수는 있지만 그 여파는 때로 당사자들의 인권과 삶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실수가 재발하지 않도록 제도적 개선과 더불어 빠르게 시정할 수 있는 장치와 철저한 점검 체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사법 절차는 공정성과 정확성이 생명이며, 이는 곧 국민의 신뢰로 이어진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