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지지층 몰두…극단주의 흘러
정파적인 미래세대 이용 반성해야

청년층 남녀 간의 인식 격차는 경종을 울릴 만하다. 동아시아연구원(EAI)이 한국리서치에 의뢰해 진행한 최근의 조사를 보자. 18~29세 연령대에서 여성은 민주당 53%, 국민의힘 15%의 호감도를 보이나, 남성은 민주당 32%, 국민의힘 33%로 정반대의 호감도를 보인다. 30~39세 연령대에선 남녀 다 민주당을 선호하나 양당 호감도 차이에서 여성은 +23%포인트(p), 남성은 +11%p로 격차가 크다.
이보다 더 심각한 성별 간 격차가 청년층의 근본적 정치의식에서 나타난다. 상황에 따라서 독재가 민주주의보다 낫다는 응답이 남성 중 18~29세 연령대에서는 24%, 30~39세 연령대에서는 21%로 70세 이상 연령대(27%) 다음으로 높다. 민주주의가 다른 어떤 제도보다 항상 낫다는 응답에서는 남성 청년층이 70세 이상 고령층보다도 낮다. 반면, 상황에 따라 독재가 낫다고 답한 여성의 비율은 18~29세 연령대에서 9%, 30~39세 연령대에서 5%로 다른 세대에 비해 압도적으로 작다. 민주주의 의식에서 39세 이하 남성층이 최저, 동 연령대 여성층이 최고를 기록한 것이다.
동일 세대의 남녀 의식 차가 이렇게 크면 사회 작동에 장애가 생긴다. 단순 의견 차이에 머물지 않고 상호 집단적 반감으로 증폭될 수 있기 때문이다. 요즘 악화일로인 정서적 양극화가 성별 의식 격차로 더 심해질 수 있다. 마주칠 일이 많은 동 세대, 특히 바삐 활동하는 청년 세대의 구성원이 남녀로 갈려 서로 경원시한다면 사회가 조화롭게 작동할 수 없다. 사회생활뿐 아니라 결혼·육아·가족관계 등 사적 차원에서도 불협화음이 커질 수 있다.
물론 미국, 영국, 독일 등 여타 민주주의 국가에도 청년층 남녀 의식 격차가 나타난다. 트럼프는 젊은 남성층의 호응을 얻어 젊은 여성층의 반감을 상쇄했다. 청년층 남녀 의식 차이는 시대적 글로벌 현상인 것이다. 사회가 파편화하고 급변하며 불확실성이 높은 가운데 아직 사회적 위치를 굳히지 못한 남녀 청년층은 목전의 이익만 우선시하게 되고 공동선이나 남의 입장을 돌아볼 여유를 갖기 힘든 시대다. 여기에,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전에 비해 올라가고 PC주의(정치적 올바름), ‘미투’ 운동 등으로 남성 행동이 제약을 받으면서, 청년 남성층이 특히 강한 상대적 상실감과 위축감을 느끼고 있다. 또한 정보화에 전면 노출된 청년층은 정보 알고리즘에 의해 확증 편향의 덫에 빠지기 쉽다. 청년층의 남녀 인식이 엇갈리게 될 수밖에 없는 시대다.
그러나 거시적 시대 조류에 의한 보편 현상이라고 안이하게만 볼 순 없다. 한국 경우에 그 정도가 유독 심하기 때문이다. 한국에는 청년층의 의식을 성별에 따라 양극으로 갈리게 하는 고유한 요인이 추가된다. 정치권의 극단주의 책략이 바로 그것이다. 여야 진영 다 첫째, 상대방을 도덕적 악으로 규정하고, 둘째, 지지층을 그들이 좋아할 수사로 정서적으로 자극·결집·동원하고, 셋째, 중도층을 향한 합리적·포용적 접근은 포기하고, 넷째, 필요시 제도 틀을 뛰쳐나가 거리에서 판을 흔드는 극단주의에 매몰돼 있다. 사회 전체를 양극화로 몰아넣는 이 책략에 특히 취약한 대상이 청년이다. 청년 대부분은 아직 정치적 입장을 공고화하기 전이고, 인생의 과도기라 심리적 불안정 상태에 있고, 행동성이 높은 데다, 무분별한 정보화로 인해 편향된 정보를 전달받기 쉽다. 정파 논리에 눈먼 좌우 양쪽 정치인들이 구사하는 편협한 극단주의 책략에 여성은 여성대로, 또 남성은 남성대로 한쪽으로 유인되고 이용당할 여지가 크다.
생각이 굳어버린 중·장·노년층보다 청년층이 더 많이 고민하겠으나 그 과정상 여야의 극단주의 책략에 영향받아 남녀 간에 의식 격차가 과하게 생긴다는 게 문제다. 정치권은 미래 세대의 남녀대결을 책략적으로 부추기고 즐기는 건 아닌지 엄중히 반성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