욱면(郁面)은 신라의 여성 노비이다. ‘삼국유사’에는 아간(阿干) 귀진(貴珍)의 계집종[婢]인 욱면이 염불을 통해 극락에 왕생한 내용이 담겨 있다. 욱면에 관해서는 ‘삼국유사’ 감통(感通)편의 욱면비염불서승(郁面婢念佛西昇)조와 ‘건봉사급건봉사말사사적(乾鳳寺及乾鳳寺末寺史蹟)’에서 전한다.
삼국유사 향전에 따르면, 욱면은 신라 제35대 왕인 경덕왕(景德王·
광덕(廣德)의 처는 신라 제30대 문무왕(재위 661∼681) 대의 여성이다. ‘삼국유사’ 감통(感通)편의 광덕엄장(廣德嚴莊) 조에 나온다. 광덕은 친구인 엄장과 함께 부처님이 계시는 나라인 불국토(佛國土), 즉 서방세계(西方世界)에 가기 위해 수행하던 사문(沙門), 즉 중이었다. 엄장과 달리 광덕에게는 아내와 자식[妻子]이 있었다. 광덕과 엄장은 먼저 성
벽화(碧花)는 신라의 여성으로, 아버지는 파로(波路)이다. 벽화는 신라 제21대 왕인 소지왕(炤知王·재위 479∼500) 대의 인물이다. ‘삼국사기’에는 파로가 딸 벽화를 소지왕에게 바친 일화가 나온다. 소지왕은 비처왕(毗處王)이라고도 하였는데, 자비왕의 맏아들이다.
소지왕이 재위 22년(500) 가을 9월에 날이군(捺已郡·현재 경북 영주)에 행차하였다.
치술부인(鵄述夫人)은 신라 제18대인 실성왕(實聖王·재위 402~417)의 딸이자, 박제상(朴堤上)의 아내이다. 제상은 삼국사기에는 시조 혁거세의 후손이며 파사 이사금의 5세손이라고 하여 박씨라고 하였다. 삼국유사에는 김씨로 전한다. 제상은 눌지왕 대의 삽량주(歃良州, 지금의 경남 양산)의 지방관이었다.
실성왕은 신라 17대 내물왕(奈勿王·재위 356∼4
소서노(召西奴, B.C. 66∼B.C. 6)는 백제의 건국 시조인 비류(沸流)와 온조(溫祚)의 어머니, 백제 건국신화에 등장하는 시조모(始祖母)이다. 이들의 이야기는 건국신화로서 백제인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것이었다.
비류와 온조의 이야기는 고구려의 시조 주몽이 북부여에서 졸본부여로 쫓겨오면서 시작된다. 당시 왕은 주몽이 범상치 않은 인물임을 알아보고 딸을
사씨(史氏)는 신라 최초의 여성 출가자이다. 신라에 처음으로 불교를 전래한 이는 고구려 사람인 아도(阿道 또는 我道)이다. 아도가 처음 신라에 와서 불법(佛法)을 전하려고 할 때에 신라 사람들은 매우 꺼리고 심지어 죽이려고 하는 사람도 있었다. 이에 아도는 일선현(一善縣·지금의 경북 구미)에 있는 모례(毛禮)의 집에 도망쳐서 숨었다. 이와 같은 인연으로 모
고도령(高道寧)은 고구려 사람으로, 아도(阿道 또는 我道)의 어머니이다. 아도는 신라에 처음으로 불법(佛法)을 전한 인물이다. 삼국유사 흥법편(興法篇)에 실려 있는 아도본비(我道本碑)에 따르면 아도가 신라에 불법을 전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아도의 어머니인 고도령 덕분이었다고 한다. 중국 위(魏)나라 사람인 아굴마(我崛摩)가 정시(政始) 연간(240~248
손순의 처는 신라 제42대 흥덕왕(興德王, 재위 826∼836년)대 경주 모량리(牟梁里) 사람이다. 손순의 처는 ‘삼국유사’의 ‘손순이 아이를 묻다[孫順埋兒]’ 조에 나온다. 손순은 ‘손순(孫舜)’이라고도 하는데, 아버지는 학산(鶴山), 어머니는 운오(運烏)이다. 아버지가 죽자 아내와 더불어 남의 집에 품을 팔아 얻은 곡식으로 늙은 어머니를 봉양하였다
수로부인(水路夫人)은 신라 제33대 성덕왕(聖德王, 재위 702∼737년) 대의 인물로, 순정공(純貞公)의 부인이다. 수로부인은 2수의 향가(鄕歌), ‘해가(海歌)’와 ‘헌화가(獻花歌)’의 주인공이다. 우선 ‘헌화가’와 관련된 일화를 보자. 순정공이 강릉태수로 부임하러 가던 길이었다. 도중에 바다를 바위 봉우리가 병풍과 같이 둘러친 바닷가에서 점심을 먹던
혜명왕후(惠明王后)는 신라 제36대 효성왕(재위 737∼742년)의 왕비이다. 혜명왕후는 이찬(伊飡) 김순원(金順元)의 딸이다. 김순원 세력은 성덕왕 대에 이어 효성왕 대에도 유력 귀족가문이었다. 김순원은 성덕왕 19년(720)에 그의 딸인 소덕(炤德)을 성덕왕의 후비로 들여보냈다. 효성왕은 김순원의 외손자이다.
김순원은 그의 딸 혜명을 효성왕 3년
신목왕후(神穆王后)는 내물왕 8세손인 일길찬(一吉飡) 김흠운(金欽運)의 딸이다. 신라 제31대 신문왕(神文王, 재위 681∼692년)의 두 번째 왕비이고, 제23대 효소왕(孝昭王, 재위 692∼702년)과 제24대 성덕왕(聖德王, 재위 702∼737년)의 어머니이다. 신문왕이 즉위한 해인 681년에 첫째 왕비의 아버지인 김흠돌의 모반사건이 일어났다. 김
보도부인(保刀夫人)은 성은 박씨이고, 신라 제23대 법흥왕(法興王, 재위 514∼540)의 왕비이다. 보도부인의 다른 이름으로는 ‘삼국유사’에는 파도부인(巴刀夫人), ‘울주천전리각석’에는 부걸지비(夫乞支妃)가 전한다.
법흥왕은 527년에 불교를 공인하고, 529년에 살생을 금지시킨 왕이다. 법흥왕은 불교를 공인한 후에 흥륜사(興輪寺)를 창건하고 출가
서울시는 보물 제723호인 '삼국사기'를 국보로 승격 추진한다고 13일 밝혔다. 또 과거 시험의 참고서였던 '신간유편역거삼장문선대책'을 보물로 신청하고, 사경에 칠언시를 가미한 '감지은니범망경보살계품'을 국가문화재로 신청한다.
시에 따르면 보물 제723호 삼국사기는 국보로 승격될 가능성이 가장 높은 문화재다. 완질본으로 동일한 타 판본보다 보존 상태가 양
오늘날 한국 사학계에서 가장 많은 논란이 일고 있는 문제는 역사 연구의 방법론이 아니라 식민사관이다. 그렇다면 해방 이후 7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 한국 사학계에서 끊임없이 식민사관 문제가 거론되고 있는 이유는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또한 한국사 서술을 두고 실증주의 사학과 민족주의 사학이 서로 대립하고 있는 까닭은 무엇일까. 그리고 무엇 때문에 한국사
한국학중앙연구원 신임 원장에 이기동(73) 동국대 사학과 명예교수가 선임됐다.
한중연은 최근 이사회를 열고 이기동 명예교수를 신임 원장으로 선임했고 21일 교육부 승인을 받았다. 임기는 3년이다.
한국 고대사 분야의 대표적 연구자로 꼽히는 이기동 신임 원장은 서울대 사학과와 동 대학원 사학과를 졸업하고 경북대와 동국대에서 교수로 재직했다. 1997년에는
1979년, ‘환단고기’가 세상에 공개되자 강단사학계는 위서로 내몰았다. 첫째, 편찬 시기를 믿을 수 없다고 점과 둘째, 문화·국가·세계처럼 근대 용어들이 사용되고 있다는 점 등을 위서의 근거로 들었다. 그러나 문화, 국가, 세계 같은 용어들은 중국 고전에서 이미 사용하던 용어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심지어 근대라는 말도 이미 당(唐)나라 때 사용하던 용어라
이덕일 역사학자·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소장
조선총독부 직속의 조선사편수회는 중국 한나라가 (위만)조선을 멸망시키고 세운 한사군(漢四郡)의 위치를 한반도 북부라고 확정지었다. 한국사는 식민지의 역사로 시작되었으니 일본의 식민지가 된 것은 역사적 귀결이라고 주장하기 위한 것이었다. 문제는 해방 후에도 친일청산에 실패하면서 이런 식민사관, 즉 조선총독부
한반도 남부에 임나일본부가 있었다고 언급하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말 일본에서의 정한론(征韓論)이다. 그 이래 20세기 초반 일본의 어용학자들이 ‘가야=임나’라는 등식을 반복ㆍ재생산해왔다. 메이지 시기의 반 노부토모(伴信友), 나카 미치요(那珂通世), 간 마사토모(菅政友) 등을 비롯해 일제강점기 때의 쓰다 소키치(津田左右吉), 이마니시 류(今西龍)가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