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일상에서 ‘제목’이라는 말을 많이 사용한다. 글을 지을 때도 제목을 먼저 정해야 하고, 책을 살 때도 제목을 먼저 보고, 노래방에서 노래를 부를 때에도 제목을 찾는다. 제목은 글, 책, 노래 등의 핵심 내용을 보이기 위해 붙인 이름인 것이다.
‘題’는 원래 하나의 문체(文體)로, 오늘날로 치자면 평론에 해당하는 글이다. 어제의 글에서 살핀 제발(題跋)의 ‘題’가 바로 그것인데 실은 題가 ‘○○○에 제하여 쓰다’라는 의미의 글자로 사용된 것은 題跋이라는 문학 장르가 나오기 훨씬 전부터이다. 題目의 ‘題’가 바로 그런 예이다. 題目은 원래 ‘눈(目)에 題하여 쓰다’라는 의미인 것이다.
‘학과목(學科目)’의 ‘과(科)’자를 쓰는 과거(科擧)는 학과시험을 통하여 인재를 들추어내는(擧:들출 거) 제도로, 당나라 때에야 시행하였고 그 이전에는 ‘찰거’로 인재를 뽑았다. ‘살필 찰(察)’자를 쓰는 찰거(察擧)는 외모와 행동을 살펴서 인재를 들추어내는 방식으로 오늘날로 치자면 면접시험에 해당한다.
찰거를 잘하기 위해서는 눈빛을 살피는 일이 무엇보다도 중요했다. 눈을 통하여 내면의 정신을 읽을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관상학에서는 ‘안상(眼相)’을 특별히 중시했고 화가들은 인물화를 그릴 때 그 사람의 내면정신을 완전히 파악할 때까지 눈을 그리지 않고 놓아두었다가 맨 나중에야 눈동자에 점을 찍었다. 화룡점정(畵龍點睛)도 눈을 통해 용의 정신을 그려 넣기 위해서였다.
결국 사람을 살펴 판단한다는 것은 눈빛을 보고서 그 사람의 내면을 살피는 것에 다름이 아니었다. 이러한 까닭에 찰거의 최종 결과는 그 사람의 눈에 題하여 쓰는 한두 마디의 글로 마무리되었다. 그것이 바로 제목이다. 이런 제목이 나중에는 사람뿐 아니라 책이나 그림, 시, 노래 등에 담긴 내면정신이라고 할 수 있는 핵심 내용을 드러내는 말로까지 확대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