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바 ‘영리치’(Young Rich)로 불리는 20·30대 젊은 자산가들이 서울 초고가 주택의 ‘큰 손’으로 떠올랐다. 자산가들의 양도는 물론이고 가상화폐나 주식 등 단기간에 큰돈을 벌어들인 이들이 부동산으로 자산을 불려 나가려는 시도로 해석된다.
14일 대법원 등기정보광장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서울 서초구 ‘래미안원베일리’ 101㎡(이하 전용면적)를 산 1999년생 매수자가 최근 소유권이전등기를 완료했다. 거래 금액은 63억 원(17층)으로, 동일 평형 기준 역대 최고가다. 등기부 등본에 별도의 근저당권이 설정돼 있지 않아 전액 현금으로 대금을 지급한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해 200억 원 이상 초고가 거래가 두 건이나 이뤄졌던 용산구 ‘나인원한남’에서도 전액 현금 거래가 이어졌다.
지난해 7월 이 단지 206㎡는 1985년생인 2명의 집주인이 공동명의로 110억 원(5층)에 매수했다. 등기부 등본에 근저당권은 없는 상태다. 매수자 중 한 명은 2022년부터 보증금 75억 원에 해당 주택에서 전세로 살기 시작했는데, 직전 소유주가 집을 팔기로 하면서 매수를 결심한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지난해 4월에는 같은 단지 244㎡ 매물에서 2021년 기록한 직전 신고가(90억 원)보다 30억 원 오른 120억 원(4층)의 매매계약이 체결됐다. 매수인은 1989년생으로 전액 현금 거래를 했다. 인근 ‘한남더힐’ 233㎡도 지난해 1월 1998년생 매수자가 전액 현금으로 사들이며 94억5000만 원에 손바뀜했다.
국내 아파트 최고 분양가로 이름을 알린 강남구 ‘에테르노 청담’이 지난해 상반기 입주를 완료한 가운데, 수분양자 중에는 ‘풀 현금’으로 집을 산 30대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021년 분양 당시 244㎡(9층)를 130억 원에 분양받은 뒤 지난해 8월 잔금을 완납했다. 이 단지 수분양자 중 30대는 1993년생 연예인 아이유 등 2명이 더 있는 것으로 확인된다.
한 분양사 관계자는 “과거 정·재계 인사나 일부 중견급 연예인에 국한됐던 초고가 주택 수요가 2020년대 들어 증여·상속으로 자산을 불린 젊은 층이나 운동선수, 유명 강사 등으로 확대됐다”며 “최근에는 비트코인 투자자와 대형 유튜버도 시장에 참여하는 추세”라고 말했다.
이 같은 현상의 배경으로는 젊은 자산가들의 ‘똘똘한 한 채’ 투자 심리가 지목된다. 주택 여러 채보다 상징성이 큰 수백억 원대 아파트 한 채를 보유하는 것이 추후 더 큰 시세차익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기대가 반영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정보현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초고가 주택은 일반 아파트와 달리 대출 영향이 적고 재건축 사업성 등 시황에 상대적으로 덜 민감한 데다 시장 침체기에 거래가 없어 하락 폭이 가시화되지 않는다는 특성이 있다”며 “반대로 활황기에는 상방 한계가 없어 상승 탄력이 클 것”이라고 말했다.
현금 부자들의 ‘옥석 가리기’ 영향으로 서울 주택 시장에선 지역별 격차가 더욱 벌어질 것으로 보인다. 백새롬 부동산R114 책임연구원은 “여느 때보다 가격 상승 여력 등 미래가치와 희소성이 대두된 상황”이라며 “분양가 인상률과 대출규제 장기화, 미분양 적체 등이 부동산 시장 활성화에 추가적인 걸림돌로 작용해 일부 단지 쏠림 현상이 더욱 짙어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