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아 카카오 대표와 샘 올트먼 오픈AI 최고경영자(CEO)가 4일 서울 중구 더 플라자 호텔에서 열린 전략적 제휴 관련 기자간담회에서 대담하고 있다. 올트먼 CEO는 파리에서 열리는 AI 국제 정상회의 참석에 앞서 8일(현지시간) 프랑스 일간 르몽드 기고문에서 “유럽 규제당국이 그들의 결정이 초래할 결과에 대해 심사숙고 해야 한다”고 밝혔다. 연합뉴스](https://img.etoday.co.kr/pto_db/2025/02/600/20250210183317_2135064_1200_799.jpg)
샘 올트먼 오픈AI 최고경영자(CEO)가 유럽연합(EU)에 일침을 날렸다. “EU 미래를 위한 ‘실존적 도전’의 중심에 인공지능(AI)이 있다”는 쓴소리다. 올트먼은 10~11일(현지시간) AI 파리 정상회의에 앞서 현지 일간 르몽드 기고문을 통해 AI 산업 규제에 치중하다 못해 미국 빅테크까지 옥죄는 EU 행태를 꼬집었다. “남들이 전진하는 상황에서 규제법 시행을 위해 노력하는 결정이 미래에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도 했다.
마리오 드라기 전 유럽중앙은행(ECB) 총재가 지난해 9월 발표한 ‘EU 경쟁력의 미래’ 보고서도 소환됐다. 미국·중국과 경쟁하기 위해 매년 8000억 유로(약 1185조 원) 투자와 산업 전략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이 드라기 보고서의 골자다. 경쟁력 하락이 계속되면 자유·평화·복지·환경·민주주의 같은 가치조차 지킬 수 없게 된다는 위기의식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올트먼은 보고서를 거론하며 AI 투자 필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EU는 세계 최초로 포괄적 AI 규제법을 제정해 2026년 8월 전면 시행을 앞두고 있다. 결정적 문제는 AI 기술이 아니라 규제에서만 앞서 나간다는 점이다. 이런 퇴행이 없다. AI를 비롯한 첨단 기술 분야에서 EU 존재감이 없는 것은 필연적 귀결이다. 올트먼이 따끔히 짚었다.
그나마 프랑스를 중심으로 변화의 바람이 부는 것은 드라기 보고서 등의 각성 효과 덕분일 것이다.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9일 “기업들이 수년간 프랑스의 AI에 1090억 유로(약 163조4000억 원)를 투자하기로 했다”며 “미국의 스타게이트(AI 인프라 투자 프로젝트)에 버금가는 시도”라고 했다.
EU 쪽만 바라볼 상황이 아니다. 한국 AI 생태계도 볼품없기는 마찬가지다. AI 반도체 대표기업 몸값만 견줘봐도 한눈에 알 수 있다. 미 CNBC 등에 따르면 오픈AI의 기업 가치는 최대 3000억 달러(약 437조 원)다. 더욱이 미국 증시엔 그 10배 시가총액 규모를 자랑하는 매머드급도 없지 않다. 반면에 국내 간판급인 삼성전자(약 331조 원·10일 기준)와 SK하이닉스(약 144조 원)는 시총을 합쳐봐야 오픈AI 하나를 감당하기도 버겁다. 미래에 기대를 걸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우리 정부의 올해 예산 673조3000억 원 중 AI에 배정된 금액은 1조8000억 원이다. 전체의 0.27%에 불과하다. 이래서야 글로벌 선두주자들을 어찌 쫓아가겠나.
AI 기본 환경도 EU에 비해 낫다고 자신할 수 없다. 지난해 말 국회 관문을 넘은 AI 기본법은 진흥과 규제를 아우르는 골격이지만 EU 규제 모델을 따른다는 함정이 숨어 있다. 자율 규제가 아닌 법률을 통한 규제라는 점이 특히 위험하다. 법적 구속력 없는 가이드라인만 제공하는 미국·중국·일본의 자율 규제와는 다르다. 한국 기업들은 AI 트랙에 모래주머니를 주렁주렁 달고 나설 개연성이 많다. 진흥·규제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겠다는 책략이지만 이럴 때 토끼들은 다 도망치기 일쑤다. 너무 늦기 전에 올트먼의 쓴소리를 되새겨야 한다. 우리 처지가 EU보다 더 다급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