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들은 왜 야당을 택했을까. 아니 왜 여당을, 정권을 거부했을까.
생각해보건대 자신들을 개혁의 대상으로 본 박근혜 정권이 싫었기 때문일 것이다. ‘관피아 척결’ 이란 구호가 난무하는 상황에서 여당에게 투표해야 그나마 자리 보전할 수 있다는 통념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을 것이다.
세종시의 반란을 아는지 모르는지 세간의 시선은 공무원에 대해 부정적인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최근 한 신문에서 여론조사를 실시했는데 박근혜 대통령의 향후 최우선 국정운영 과제로 ‘공무원 및 관료사회 개혁’를 꼽았다고 한다.
이쯤에서 한번 생각해보자. 공무원들은 예전보다 더 지탄받아야 할 존재가 된 것일까.
과학적으로 조사는 해보지 않았지만 결코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공무원들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었다. 공무원하면 복지부동과 보신주의가 떠오르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개혁의 대상이 돼야 할 특별한 이유는 없다. 정권 초기에 반짝 열심히 일하다 정권 후반에 들어서면 동면(冬眠)에 들어가는 반달곰 공무원들이 이곳저곳 포진해 있지만 그렇다고 반달곰을 척결의 대상으로만 보는 건 문제의 본질을 비켜가는 것이다.
공무원 사회가 썩었다고 끌탕을 하지만 이 또한 주관적인 생각일 뿐이다. 국민의 공복(公僕)인 만큼 다른 조직보다 더 높은 도덕성이 요구되지만 그것을 충족시키지 못한다고 해서 썩었다고 비난하는 건 지극히 감정적이다.
공무원들이 일을 하지 않는다고 손가락질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일을 하지 않는 사람은 일부분일 뿐이고 이 정도 일탈자는 어느 조직에나 있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치 대다수 공무원들이 놀고 먹고 있다고 생각하는 건 합리적이지 못한 생각이다.
다시 세종시로 가보자.
정권에 반란표를 던진 공무원들은 지금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자신들이 적폐일소의 한 부분이 된 것에 대해 참기 힘든 불편함을 느꼈을 것이다. 그러면서 자신들이 정권 유지를 위한 수단으로 악용되는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가졌을 것이다. 대한민국의 민낯이 만천하에 공개된 것과 관련, 자신들에게 책임이 지워지는 듯한 분위기에 강한 거부감을 보였을 것이다.
단언컨대 지금처럼 개혁하겠다고 달려들면 결코 개혁에 성공할 수 없다. 공무원을 개혁하겠다는 것은 국가를 개조하겠다는 것과 마찬가지로 거대 담론이기 때문이다.
앨빈 토플러는 주요 기관들을 고속도로에서 각기 다른 속도로 달리는 차로 설명했는데 기업은 시속 100마일로 변화하고 시민단체가 90마일, 가족이 60마일, 노동조합이 30마일, 정부가 25마일로 변한다고 말했다. 그만큼 관료사회가 시대의 흐름에 뒤처지고 있다는 얘기인데 그렇다고 강압적인 방법으로 속도를 높이는 건 불가능하다.
관료사회 개혁은 제도와 시스템, 그리고 리더십이 필요한 장기 레이스다. 장기전에서는 특히 통치권자의 철학과 의지가 뒷받침돼야 한다. 지금처럼 어느 것 하나 없는 상태에서 말로 몰아붙이기만 하면 되는 것도 없고 안 되는 것도 없는 냉소적인 상황만 연출될 뿐이다.
‘관피아’ 논란도 마찬가지다. 공무원들의 경험과 경륜은 사회의 소중한 자산이다. 일부 문제점이 노출됐다 해서 공무원을 진짜 마피아로 낙인찍는 건 마녀사냥이나 다름없다. 안 되는 것만 정해 놓고 나머지는 자유스럽게 허용하는 네거티브 방식의 용인술을 통해 공무원들이 조직과 사회에 기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안 된다고 정해놓은 것을 어길 때는 엄벌에 처하면 된다.
지금은 구체적인 문제점 파악과 그에 대한 대안 내지는 대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공무원을 배출하는 고시제도가 문제라고 생각하면 토론도 하고 공청회도 열어 대안을 찾아라. ‘연줄 인사’가 조직의 효율성을 저하시킨다고 판단되면 이를 막을 실질적인 제도나 법을 만들어라. 한 걸음이라도 스텝을 밟아야지 그냥 서서 내려다보며 말로만 하려 하면 되겠는가.